대한민국에 사는 혼혈(混血)인들. 예를 들면 주로 아버지가 백인 또는 흑인 아니면 어머니가 아시아계 황인종 등이 대부분이다. 부모 중 한쪽이 유럽인 또는 러시아인인 혼혈 2세들도 더러 있다. 이들은 외모에서부터 구별된다.
이들에겐 특히 대한민국에서 순혈(純血) 한국인보다 힘든 삶이 기다리고 있다. 문화적 이질감에 대한 거부,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이들을 괴롭힌다. 어릴 때부터 놀림감이 되고 사회적 이단아로 취급받다 보니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러다 보니 몇몇 연예인이나 안정된 직장이 있는 혼혈인들이 있는가하면 음지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실제 음지를 지향하는 이들을 찾아 취재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화번호가 수시로 바뀌고 없던 전화번호가 되어버린다.
양지를 지향하지만 음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혼혈인의 애환을 들어봤다. '뭐가 그리 힘들까' 이들의 얘기를 통해 느껴보자.
◆대구·경북지역 혼혈인
사)국제가족한국총연합 대구경북지회에 따르면 지역의 혼혈인들이 이제 다들 뿔뿔이 흩어져 모이지도 않을 뿐더러 연락을 해도 취재에 응할 사람이 찾기 힘들었다.
이 지회를 이끌고 있는 황의습(53·사진) 회장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성인 혼혈인들이 400~500명 가량이며, 3년 전까지만 해도 모임이 결성돼 17명까지 모여 서로 애환을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임을 이끌던 이들이 불상사를 겪으면서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 모임 자체가 깨져버렸다.
앞으로는 혼혈인이 더욱 급증한다. 경북지역에 농촌지역에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계 여성들이 대거 결혼해 2세 혼혈아인 코시안들을 낳다 보니 앞으로 이들이 컸을 때는 혼혈인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은 몇몇 사례를 들어줬다.
아버지가 미군인 한 회원은 경북 왜관 미군부대 인근에 살고 있다. 이 회원은 그나마 다행인 게 어머니의 식당을 물려받고 직장도 갖고 있어 그럭저럭 양지의 삶을 살고 있다. 명랑한 성격으로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만 항상 어두면 면이 감추기 위해 남보다 몇 배이상 노력한다. 아직 결혼은 하지 못했다.
황 회장은 "직장도 없는데다 편견을 가진 한국인들과 숱하게 부딪치다보니 폭력전과가 쌓이고 마약에 손을 대는 등 제대로 살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경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특이한 것은 황 회장 까무잡잡한 피부와 긴 머리 탓에 역시 순수 한국인임에도 외모 탓에 혼혈인으로 오해를 많이 받고 있었다.
◆혼혈인, 동양 오리온스 이동준 선수
대구가 연고인 프로농구팀 동양 오리온스에는 혼혈인 이동준(29·다니엘 산드린) 선수가 있다. 이미 3년 전 귀화해 한국인 된 그는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 선수는 25일 연습이 끝난 뒤 기자와 통화에서 한국에 와서 혼혈인으로 느낀 점을 솔직히 털어놨다.
미국인 아버지는 주한미군으로 서울 용산에서 복무하다 한국인 어머니를 만나게 됐고 혼혈인 두 형제가 태어나게 된 것. 둘은 시애틀에서 자랐으며 학창시절부터 농구를 했다. 하지만 둘다 어머니 나라인 한국 프로팀에 들어왔다. 삼성에 입단하게 된 형 이승준 선수(31·에릭 산드린)는 이번 귀화시험에서 떨어졌다.
동생인 동준 씨는 "3년 동안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싸움(주먹다짐)을 하고픈 충동이 들 때도 많았다."며 "운동할 때도 연습과 시합 때 태도가 너무 차이가 많이 나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감독이나 코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큰 애로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한국귀화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 연세대 어학당에서 6개월 동안 밤낮없이 한국어를 공부하고 또 한국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과는 귀화시험 단방에 합격.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한국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며 너무 신경쓰지 말고 항상 오래 참고 열심히 운동해라"고 조언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참고 또 참았다.
그는 "형은 나보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라며 "귀화시험이 그냥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야 한다고 조언도 해줬다"고 말했다. 이에 형 승준 씨는 "나도 동생처럼 귀화해서 국가대표가 돼 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혼혈 연예인의 대명사 가수 인순이
가수 인순이는 한국 혼혈인의 아이콘이다. 최근엔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로 수퍼볼 MVP에 빛나는 하인스 워드도 혼혈인의 희망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이들은 혼혈인 중에서 스스로 자기 분야를 개척한 입지전적 인물이랄 수 있다. 인순이는 어떤 말을 할까.
인순이씨는 성공한 혼혈 한국인으로 모든 걸 털고 살 것 같았지만 막상 딸이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놀림거리가 되거나 멸시 당할 걸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며 "난 아이가 한국에서 마음 상하지 않고 자라길 바랐다"며 "딸을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에 보내면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해서 미국에서 출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에 대해서도 "지금 시대에 혼혈의 구분은 국적으로 선을 긋기보다 문화로 선을 긋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워드의 성공을 계기로 혼혈에 대한 일말의 편견조차 사라졌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인순이씨는 "우리 혼혈인들은 150% 노력을 해도 효과는 90%밖에 안 나타난다"며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 의무감이 늘 존재한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도 연습벌레처럼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방송할 때 사례도 소개했다. 곱슬머리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당했으며 그래서 모자를 쓰거나 머플러로 묶는 식으로 나 스스로를 감춰야 했던 때도 있었던 것.
한편 인순이 외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혼혈 연예인들도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사회의 편견을 깨기 위해 혼혈인 중 더 많은 성공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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