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 '외국인 공무원 1호' DGFEZ 사이먼 브루스 호겟씨

호겟씨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호겟씨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어떤 분야든 '1호'라면 부담스럽다. 그만큼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눈길과 기대를 한몸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외국인 공무원 1호가 탄생했다. 캐나다에서 온 사이먼 브루스 호겟(Simon Bruce Hoggett ·34)씨. 이달 1일자로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에서 근무하게 된 6급 공무원이다.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만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에 어떤 역할을 할 지 주목된다. 비록 2년 계약직이지만, 앞으로 대구·경북 지식경제자유구역에 외국기업의 유치투자를 이끌 중요한 자리다. 또 2년 뒤 3년간 재계약도 가능하고, 사무관 승진까지도 가능하다.

캐나다 광부의 아들이지만, 한국에 8년동안 살아 한국정서에도 꽤 익숙하다. 2년 전에는 한국 여성과 결혼해 대구에서 살림을 꾸려 잘 살고 있다. 외국어학원을 비롯해 중.고교, 전문대 영어강사로 여러 곳의 경험을 통해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보였다. 다만 8년 동안 한국에 있었지만, 아직 사투리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에선 미국 영화배우 톰 행크스를 닮았다고들 한다. 그는 톰 행크스가 주인공으로 나온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기도 잘하고, 한 분야에 집중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달리기는 보통이 아니다. 대학 육상선수 출신이다. 100m 최고기록이 10초70~10초80 사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자메이카의 우샤인 볼트나 미국의 칼 루이스보다 1초 정도 밖에 느리지 않다. 30년 전 서말구 선수(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세운 대한민국 100m 최고 기록 10초34와는 더 근접하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일하고 싶었다는 호겟씨는 "제 대학 전공이 경영 비즈니스이고 현재는 호주의 퀸즈랜드 대학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는 만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에서의 근무도 더 큰 도전이 된다"며 "향후 5년간 경제자유구역의 투자유치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구 첫 외국인공무원으로 이틀째 일하러 나온 호겟 씨를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대구의 투자유치 공무원으로서의 각오를 들었다.

◆캐나다 한 광부의 아들

호겟씨의 아버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리광산에서 일하는 광부. 이 광부의 첫 이란성 쌍둥이 장남이 바로 그다. 쌍둥이 여동생이 있고, 그 밑에 남동생이 있다.

그는 방학이면 아버지를 따라 광산에서 구리나 아연을 캐내는 일을 도왔다. 인기있는 직업이었다. 한때 이 분야에 전념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게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뭔가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캐나다 광부는 보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많고 꽤 좋은 직업에 속했지만,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호겟씨는 광부인 아버지로부터 타고난 체력을 물려받았다. 이 때문에 대학시절까지 육상선수로도 뛰어난 성적을 냈던 것. 그의 남동생 역시 육상선수이고, 여동생 역시 만능 스포츠우먼이다.

그는 1997년 캐나다 대학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 200m×4명 계주에서 세 번째 주자로 뛰어 금메달을 딴 것이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육상선수로의 인생은 아니었던지,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접었다. 광부도, 육상선수도 궁극적으로 그의 평생 주업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에게 다른 길들이 열려 있었던 것.

◆8년간의 한국생활

호겟씨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과의 인연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줄 상상하지 못했다. 단지 아시아를 좀 더 알고 싶었고 그 중 한 나라인 한국에선 딱 1년만 있자고 계획했는데, 이제 거의 한국인이 돼 버렸다.

첫 시작은 충북 청주였다. 외국어학원 강사로 시작해 2년 동안을 청주에서 보냈다. 이후 그는 부산 덕천여중에서 1년간, 경북 영천 선화여고에서 1년간 원어민 영어강사를 했다.

8년 한국생활 중 절반인 4년은 대구에서 보냈다. 영진전문대학 영어강사로 4년간 일하며, 대구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주임(Head)강사로 다른 외국인 강사와는 대우도 달랐다.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최소 5년은 한국에 더 있을 것 같아요. 또 한국에서 보람된 일을 하고 싶고, 꼭 대구시를 위해 뭔가 성과를 내고 성취감도 얻고 싶어요."

8년간 한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는 폭탄주에도 일가견이 있다. 타고난 체력 때문에 웬만큼 술을 마셔도 잘 취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젠 한국정서까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직접 폭탄주를 만들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대화에 잘 끼지는 않는 편이지만, 대부분의 대화내용은 거의 알아듣는 수준이다. 영진전문대 강사시절에는 시험을 앞두고 시험 답안에 대한 힌트를 주려고 하는데 한 여학생이 '빨리 해라'고 반말을 하는 바람에 기분이 상했던 일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9대1 경쟁률 뚫고 '낙점'

이번 대구시 첫 외국인 공무원의 경쟁률은 9명 중 1명을 뽑는 경기였다. 호겟씨는 당당히 입성했다. 2개월간 신원조회를 마치고 1일부터 첫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서류전형에서 3분의 1이 떨어졌고, 면접을 본 3분의2 중에는 단연 호겟씨가 눈에 띄었다는 것이 대구시 공무원들의 면접 뒷얘기다. 그의 전공 역시 대학과 대학원 둘 다 경영 비즈니스인 것도 강점이 됐다.

그는 합격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학원 MBA과정의 수업 중에 한 외국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면접에서 그런 질문들이 나와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겟씨는 면접 뒷얘기로 "면접위원으로 들어온 대구텍 모세 샤론 사장이 면접할 때는 엄격하고 차가운 분위기였는데, 끝나고 나니 너무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모세 샤론 사장으로부터 투자유치를 위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대구 첫 공무원으로서의 각오

호겟씨는 "그동안 8년간 한국생활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살려 대구·경북의 경제를 살리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지역 산업단지, 기업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 감각도 익히고 싶으며, 투자유치단에 참여해 외국기업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기업을 끌어올 특별한 비책(Know-how)이 있냐는 질문에 "두세 가지가 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선 비밀"이라며 "일단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유치는 국제경제의 흐름, 국내외 실물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틈나는 대로 한국과 대구경북의 경제현황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 등을 통해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MBA 과정을 밟으면서 익힌 전공 지식과 개인적으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국기업 투자 유치와 해외 마케팅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선 중요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며칠씩 밤을 새워서라도 일하는 것으로 아는데, 저도 당연히 동참할 것입니다. 필요없이 시간만 보내는 일은 절대 사절이지만, 이 조직에 꼭 필요한 일이라면 저 한 몸 던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의 다짐은 단호했다. "지금 당장 캐나다에 잘 아는 기업이 있어서 유치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캐나다 정부에 손 쓸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해당 기업에 대해 투자유치에 가장 정확한 정보를 주고 충분한 유인책과 명분을 주겠습니다."

그는 "한국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 문화적인 특수성, 사고방식의 차이 등을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잘 알려줄 것"이라고도 했다.

호겟씨는 정식 근무 전인 지난달에도 서울에서 열린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설명회에 참여해 국내외 기업인 500여명에게 지역경제의 잠재력을 소개하는 팀에 소속돼 대구시 공무원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는 "이곳에 사업성이 있음을 알리고 모국인 캐나다 유망 기업도 유치하고, 그 기업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동료가 된 공무원들에게 비즈니스 영어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사이먼 브루스 호겟은? 1975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티먼스 출생. 캐나다 윈저대 경영학과 졸업, 호주 퀸즐랜드대 대학원 경영학(MBA) 석사 과정. 육상선수 출신으로 캐나다 대학육상대회 금메달리스트. 충북 청주 뉴월드 외국어학원 강사(2년), 부산 덕천여중(1년), 경북 영천 선화여고(1년), 대구 영진전문대학 영어 전담강사(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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