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시 / 네루다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르겠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혹은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 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

희미한, 뭔지 모를, 순수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에 가까운 것.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과 유성들, 고동치는 논밭과 구멍뚫린 그림자 그리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과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영화 의 제작연도를 검색해 보니 1994년, 아마도 1995년이나 1996년쯤 소극장에서 를 보았을 것이다. 필립 느와레란 이름만 믿고 본 영화였다. 텅빈 극장 전체를 독점하듯이 관람했다. 의 엔딩은 그 당시에도 나를 금방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지금까지 내 기억에서 스크롤되고 있다. 그후 를 서너 차례 더 보았다. 원작 소설도 찾아서 읽었지만 역시 영화를 먼저 보아서인지 네루다 역할을 한 필립 느와레의 둥근 얼굴이 더 인상적이다. 마지막 엔딩은 주인공 마리오의 죽음과 네루다의 '시'가 겹쳐지는 오버래핑이다. 네루다의 시는 현대적이라기보다는 근대성에 더 다가간 셈이다. 그게 감동을 주는 것은 역시 에 많이 기댄 내 정서 탓일 게고, 아직도 네루다의 근대성이 나와 일치하는 공감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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