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유동 사회와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오늘날 우리는 도처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다. 당장 우리 사회의 커다란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그렇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는 금융시장의 안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빼앗아 버렸다. 세계금융체제는 전문가들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미 이전부터 세상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한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반 시민들이 몸으로 세상의 불확실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7년에 터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딛고 있는 삶의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진행된 상황은 그런 취약한 삶의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는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려 오히려 더 연약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사회의 유동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개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연성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이자 유행하는 용어가 되었는데, 유연성은 곧 유동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를 유동 사회(fluid society)로 규정지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근대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중앙집권체제와 함께 사회적 규율체계를 구축했다. 근대국민국가는 교육과 국가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가 구성원들에게 통일된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했다. 동시에 사회적 규율체계에 의거하여 국민들에게 통일된 행동방식을 따르게 했다. 이런 통일된 행동방식은 개개인에게 행동의 자유를 제약했지만 살아가는 데 안정된 매뉴얼(manual) 구실을 했고 삶의 안정성과 확실성을 담보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보화와 세계화의 도래와 함께 안정된 매뉴얼의 의미는 급격하게 퇴색하게 되었다. 정보화에 따른 지식의 변화 속도는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식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한편 세계화에 따른 사람과 재화의 이동은 유동성을 크게 증가시키면서 삶의 확실한 기반으로서 국가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켜 왔다.

사회의 유동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국가에 못지않게 오랫동안 인간 삶의 안정적 토대였던 가족조차도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가 그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이런 통계적인 수치 외에 일상적인 장면을 한번 되새겨 보자.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밥을 함께 먹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가족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점점 보기 드문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해외에 자녀를 유학 보낸 기러기 가족의 예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식사 시간과 식사 장소가 제각각인 가족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사회가 유동화 되어간다는 것은 개개인의 삶에 대해 사회가 확실성과 안정성을 담보해 주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삶의 확실성과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일밖에 없음을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사회로 변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사회, 개개인이 오직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는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리지 않는다. 인간 삶의 모든 장면을 개인화 내지 개별화해 버린다면 인간 세상은 그저 약육강식이 펼쳐지는 정글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삶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할수록 자기계발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서로서로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거창하게 시작하기는 어렵겠지만 작은 공동체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야말로 시작은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함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백승대(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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