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인생 2막

한 변호사가 연봉 수억 원의 대형 로펌 고문 자리를 내던지고 근래 유학길에 올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릴 적 꿈인 물리학자가 되려고 66세라는 결코 적잖은 나이에 전혀 다른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5년 전 공부를 시작, 실험을 개인교습받고 영어를 익히는 등 들인 공력이 엄청났다. 앞으로 석'박사 과정까지 마칠 계획이라 하니 최소 10년 세월을 새 인생에 배정한 셈이다.

30대에 벌써 중견기업 경영인 자리에 올랐던 어떤 샐러리맨은 한창 나이에 사장 자리조차 버리고 산촌 소읍으로 삶터를 옮겼다.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생활도 좋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 바라는 삶의 때를 놓치지 않는 게 보다 긴요하다는 게 결단 이유였다. 그로 인해 억대 연봉은 사라졌지만 스스로 좋아해 일군 일터에서 나오는 적은 소득으로도 행복감은 훨씬 커졌다. 그는 그런 저런 얘기들을 인생살이 충고 서적으로 묶어 내기도 했다.

필자가 10여 년 전 취재 차 만난 어떤 분은 더 앞서 그 유사한 선택을 한 경우다. 유능한 엔지니어로 특허를 여럿 가지기도 했지만 일찍 도시 생활을 스스로 정리하고 안동 낙동강 가에 자리 잡은 것이다. 유럽 출장을 자주 다니면서 자신에게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게 된 뒤끝이라 했다. 그분 부부는 대물림한 농사꾼 못잖게 전력 다해 일하면서 더없이 평안해 했다.

몇 년 전에는 병원 문을 닫아걸고 부부가 함께 연 식당에서 철가방 배달 일을 하며 행복해 하던 어느 치과의사가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엔 프랑스에서 이름 날렸던 일본인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씨가 일흔 나이에 두 번째 인생에의 도전을 선언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가진 거나 다독거려 가며 노후를 안전운행하기보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해지고 힘들더라도 '두 번째 인생'을 꿈꾸고 도전하는 사람들 얘기다.

정년 은퇴라는 점에서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나, 우리 주위에서도 이제 당당하게 '인생 2막'을 열어 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름을 대면 대개 알 만한 대구의 전문직 출신 어느 인사가 정년 후 근교 소도시서 택시 운전을 하며 흡족하게 살더라는 소식이 그런 것 중 하나다. 한 공직 출신 은퇴자는 고정 연금 수입이 있고 고수입 전문직 자녀를 두기도 했지만 기꺼이 주유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푸근하고 멋진 풍경들이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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