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의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농·축산업의 비중이 큰 경북지역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EU 간 FTA가 발효되면 유럽산 돼지고기와 낙농품 등이 지금보다 더 많이 수입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품목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면서 가격이 내려갈게 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 좋은 유럽산 농산물을 싼값에 먹을 수 있게 되지만 지역 농가들로서는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양돈농가 '직격탄'
대표적인 피해 분야는 양돈농가와 낙농업계다. 지금도 EU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 중 비중이 가장 크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지역은 전국에서 3번째로 돼지 사육두수가 많다. 사육두수는 137만3천마리로 전국의 15.1%, 사육농가 수는 1천100가구로 전국의 14.3%를 차지하고 있다. 영천(16만2천마리) 고령(14만4천마리) 경주(13만9천마리) 군위(12만2천마리) 등의 순으로 많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산 돼지고기의 대(對)한국 연간 수출량은 20만t 규모로, 한국 돼지고기 시장의 절반에 육박한다. 유럽산 돼지고기의 가격은 국산 돼지고기보다 50∼80%가량 싸다. 냉장육과 냉동삼겹살에 부과되는 25%의 관세가 즉각 철폐되는 것이 아니어서 당장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워낙 높아 장기적으로는 이들 유럽국에 큰 이득이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 국내 돼지고기 수요 92만7천t 중 수입물량이 24.6%이고 이 중 EU산이 40.6%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돼지고기의 약 10%가 EU산인 셈이다. 이 중 대부분이 삼겹살이다.
EU산 돼지고기의 가격 수준은 작년 기준으로 국내산의 86.6%다. 25%인 관세가 철폐되면 72.1%로 가격 경쟁력이 더 세진다. 게다가 이는 지난해 평균 환율 1천374원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환율이 하향 안정화하면 더 싸질 수 있다.
실제로 냉동삼겹살 1kg 가격은 현재 한국산 7천748원, EU산 5천123원, 미국산 4천559원선이지만 FTA 타결로 관세가 철폐되면 4천264원선까지 낮아져 EU산의 시장 장악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역 양돈농가는 울상이다. 영천 금호에서 돼지 1천500여마리를 사육하는 박용활씨는 "올 들어 신종플루 때문에 수개월간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또다시 한·EU 간 FTA 체결로 타격을 받을 경우 돼지농가들은 갈 곳이 없다"면서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이 현재보다 늘어날 경우 소규모 농가들은 사육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구 대한양돈협회 영천시지부 사무국장은 "칠레와 미국에 이어 EU와 FTA가 타결될 경우 축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며 "시설 현대화 자금 지원과 사료값 보조 등 정부의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낙농품·닭고기도 영향
경북산 닭은 7천890가구에 2천578만5천마리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다. 젖소도 732가구에 4만1천두로 전국에서 3번째로 많다. 이에 따라 EU FTA 타결로 EU로부터 수입량이 증가하면 도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낙농품 수입량 중 EU 점유율은 29.4%(총 18만t 중 5만3천t)로 주로 혼합분유와 버터 제조제품이 수입되고 있다. 우유 원유 가격은 국내산이 1ℓ당 848원이며 영국산은 그 절반 수준인 490원으로 관세가 철폐되면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돼 우유제조업체의 국내 조달물량 축소와 이에 따른 국내산 원유 생산량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7만t이 수입된 닭고기의 EU 점유율은 3.7%로 2천600t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지만 FTA가 발효되면 국내산·미국산 등과 경합이 예상된다.
한편 EU 측은 한·미 FTA와 동등한 수준의 양허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우리 측은 농업의 민감성을 반영해 예외적 취급범위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했다. 쌀 등 민감한 품목은 이번 FTA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장기적으로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수입이 현재보다 12.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양돈업에 대한 피해를 파악하는 한편 FTA 파고를 넘을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경북도는 지역 양돈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양돈업의 해외 수출을 적극 모색할 계획이다.
경북도 이태암 농수산국장은 "축사시설을 현대화해 질병 발생률을 줄이는 한편 몽골 등 해외로 돼지를 수출해 FTA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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