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 지방 선거의 정당 공천제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등 지방선거에서 후보자의 정당공천 문제가 우리 정치의 주요 화제다. 지역 정치인들과 지역 민간단체는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라는 대의명분하에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정당공천이 폐지되어야 지역 정치인들이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다 과감하게 지방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당이 지방선거 입후보자를 공천할 경우 지방 정치인은 지방 선거민의 이해를 살피기 전에 먼저 중앙 정치인의 이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한다. 기업이 시장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듯이 정치인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선출직을 점유해야 한다. 따라서 공천권을 행사하는 자에게 지방 정치인은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또 이 때문에 광역 단체장, 기초단체장 등이 중앙 정부의 방침에 반하는 지방 정책을 과감히 추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렇듯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물론 지방분권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는 있다. 지방의 이해가 지방이기주의로 변질되어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는 정당공천제가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정당의 공천권 폐지는 가능할 것인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자는 선거 경쟁에 뛰어들고자 하는 정치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이는 막강한 권력이라 할 수 있다. 공천권이 폐지되면 공천권을 행사하는 자는 제도적 권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공천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스스로 이 권한을 포기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주체는 누구인가? 지방의 유력 정치인들 역시 공천권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재 중앙당이 공천권을 유지한 상황에서 중앙당에 반하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할 경우 자신의 공천이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당공천제 폐지의 당위성과 달리 변화를 주도할 주체는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를 지방 신문과 언론에서는 관심을 크게 두고 다루고 있을 뿐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지 못하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지방 정치인의 주장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천 폐지와 함께 중대선거구제의 기초의원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 필자는 소선거구제로의 전환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선거구제는 정치 신인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소선거구제라 함은 주어진 선거구 내에서 오직 한 명의 후보자, 즉 일등만이 당선되는 제도이다. 이럴 경우 정치신인이 정치 무대에 데뷔하기 위해서는 일등을 이겨야만 한다. 이는 정치 신인에게 쉽지 않은 일이며 현직 의원이 계속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선거시장의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소선거구제에서 정치인들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소수 핵심 지역 거주자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선거구 크기가 작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동네 산악회 부녀회 등 소규모 이익집단이 지역 정치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에 그리 부합하지 않는다. 필자는 기초의원 선거제도에서 중대선거구제도는 유지되어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선거구제도 하에서 유능한 정치신인들이 보다 손쉽게 등장할 수 있고 보다 자율적으로 지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문제라는 자탄의 목소리가 높지만 한국 정당이 지역정치인의 연합체가 아니라 중앙 집중화되어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각 정당이 특정 지역의 정치적 지지에 기반하고 있지만 정당은 지역 이해에 둔감한 형편이다. 물론 지역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지역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상충할 경우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당 역시 중앙과 지방의 조화로운 힘의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정당공천제하에서 중앙정치인과 지방정치인 사이의 힘의 균형은 어려워 보인다. 보다 활발한 지방자치를 위해 정당의 분권화가 필요하고 정당공천제 폐지는 이에 기여할 것이다.

한병진 계명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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