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젠더시티

유럽연합에 속해 있는 국가들은 지역 개발에 대한 구조기금 및 사회기금 지원을 받으려면 여성의 요구를 반영한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야 한다. 이 조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적용되었고, 유럽연합의 구조기금 사업으로 개발이 촉진된 알프스 지역의 도시들은 '젠더시티'라는 브랜드를 얻게 되었다.

젠더시티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고려한 도시'를 말하며, 그 출발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미의 여성 운동가들이 생활 속에서 여성의 안전이 위협을 받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밤길 안전 문제가 여성의 도시생활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캐나다 등지에서는 밤길 안전에 대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고, 여성이 보다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시책을 이끌어 냈다.

1994년에는 국제사회의 의제로 '여성의 도시권'이 상정되는데, 도시권이란 도시조성 과정에 결정 및 참여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을 말한다. '도시 여성을 위한 유럽선언'은 도시의 사용자 및 계획자로서 배제되었던 여성의 요구를 반영하는 젠더시티 이념 형성에 토대를 만들어 주었고, 1996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제2차 유엔定住(정주)회의는 '인간 정주의 성 평등'을 천명하였다.

최근 국내에서도 여성친화도시라는 젠더시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의 '女幸(여행)프로젝트'는 여성을 포함하여 교통, 주택, 문화 등 전 정책 분야에 걸쳐 기획 및 입안 단계에서부터 여성의 요구를 반영한 행복한 도시를 만들고자 한다. 3월 여성부로부터 제1호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받은 익산시는 기업하기 좋은 지역이 되기 위해 젠더시티의 이념을 수용한 사례이다. 익산시는 현재 이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고자 할 뿐 아니라, 모든 조례들의 내용을 검토하는 작업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젠더시티는 물리적 공간과 함께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조성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2년 해양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는 여수시 또한 '세계에서 여성이 가장 행복한 도시'를 외부인들이 체험하고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젠더시티는 21세기 도시정책의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던 하드시티에서 문화, 예술, 디자인을 중시하는 소프트시티로의 변화 추세는 여성의 창의적이고 섬세한 에너지가 도시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여성의 경쟁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으로 인식되면서 도시가 발전하면 여성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행복한 도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젠더시티 이념은 혁신도시나 신도시 건설에서도 수용되고 있다. 혁신도시사업은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 지역의 성장거점 지역에 미래형 도시를 조성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으며, 인구유입 효과에 대한 기대는 배제될 수 없는 사항이다. 그런데 대구로 이주할 공공기관 종사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여성과 가족을 고려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가족단위 이주가 어려울 것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여성 및 가족 친화적 환경에는 우수한 교육시설, 편리하고 안전한 주거환경, 자연친화적인 휴식 공간, 다양한 문화적 향유 기회, 동반 배우자의 취업 기회 등의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와 관련하여 발표된 자료에서 강조된 한 내용이 떠오른다. 그것은 "대구가 잘 살 수 있으려면 중심도시 기능을 회복하고, 개방 도시가 되어야 하며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청이었다. "쾌적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도시"는 여성친화도시, 즉 젠더시티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젠더시티는 구호만으로는 조성될 수 없다. 정책 결정자가 아무리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참여와 책임감이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대구가 국제도시로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열린 의식, 민주적 절차, 합리적 소통, 사회적 배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원(대구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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