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레디 액션…꿈을 찍어요"

자유분방하게 표현…글쓰기·창의성 교육 좋은 재료

운암초교 학생들은 해마다 꿈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단편영화를 직접 만든다. 학생들이 시나리오 연습을 하고 콘티를 짜고, 촬영하고 있는 장면. 운암초교 제공
운암초교 학생들은 해마다 꿈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 단편영화를 직접 만든다. 학생들이 시나리오 연습을 하고 콘티를 짜고, 촬영하고 있는 장면. 운암초교 제공

요즘 영화는 단순한 오락 수준을 넘어선다. 외국영화는 외국어 교재로 써도 손색이 없다. 한 도시나 국가의 사회상과 문화를 읽는 재료로도 쓰인다. 실제로 영어 애니메이션으로 아이들 영어 조기 교육에 활용하는 가정도 많다. 교육현장에서도 영화는 쓸모가 많다. 기존의 작품을 활용하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지만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학교도 있다. 'MIE'(Movie in Education), 즉 '영화 활용 교육'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내 손으로 영화 1편 '뚝딱'

대구 운암초등학교(북구 구암동)는 이달 7일 학생들의 작품 5편이 다음달 14~18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4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 본선작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유일한 경쟁부문인 '레디~액션!'에 출품한데다 60여편 가운데 최종 선정된 20편 가운데 5편이나 들었다니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은 셈.

운암초교 학생들이 이렇게 영화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영화 활용 교육 덕택이다. 운암초교는 지난 2005년 영화시범학교로 지정된 이후로 수업에 영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교과교육과 연계한 영화 활용 학습, 재량활동 중 영화교육, 계발활동 중 영화부 운영, 매년 10월 운암창작영화제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코 인기는 영화부 활동.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다. 5, 6학년 학생들은 해마다 각 반별로 1편씩 직접 영화를 제작한다. 4학년은 뮤직 비디오를 만든다. 올해도 1학기에 6학년들이 작품을 제작했다. 2학기에는 5학년들 차례다. 학생들이 찍은 작품은 10월에 열리는 '운암어린이영화축제'에서 상영된다. 시상도 하니 작기는 해도 정식 영화제는 영화제인 셈.

제작에는 모든 학생이 동원된다. 기획 단계부터 촬영까지 전 과정을 학생 스스로 진행한다. 교사가 출연하는 경우도 있단다. 편집만 영화강사(배미화씨)가 돕는다. 시나리오 작업에 촬영, 연출, 연기 등 각자 분야를 하나씩 맡아 일을 진행하고 소품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프로 영화인 못잖은 열정을 과시한다. 장소는 주로 교내이지만 인근 뜨락공원이나 운암지 공원, 함지산에서 '로케 촬영'도 한다. 8㎜ 캠코더를 들고 제작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한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도 촬영 순간만은 진지하다.

길어야 8~10분 정도의 짧은 작품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시각으로 영화를 제작하다 보니 그 나이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것이 많다.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들도 '만우절에 담임 교사가 전근 간다는 소문을 듣고 이의 사실 여부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은 것'('슬픈 만우절') 등 독특함이 묻어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로 하는 창의력 향상 수업

운암초교는 지난해 MIE 수업을 인정받아 창의성 인증학교에 지정됐다. 그런 흔적은 학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1층 로비와 계단 등에는 영화 제작 활동상을 담은 사진이 가득하다. 2층 '영화 이야기'(Movie Story)라고 이름 붙인 구역에는 그동안 운암초교 학생들이 찍은 영화 DVD와 제작한 소품, 학생들이 기존 영화를 직접 모방한 포스터 작품 등이 진열돼 있다. 학생들의 관심도 끌지만 외부 손님들에게도 인기 있는 전시물이다.

이렇게 적극적인 영화 제작 활동 결과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아르떼 1018영상제'에서는 동상을 받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구시교육정보원이 주최한 '동영상·사진 UCC 공모전'에도 출품해 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수업에도 활용된다. 방식은 이렇다.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준 다음 중간을 건너뛴다. 그리고는 그 다음 장면을 보여주고선 중간의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학생들은 자기 나름의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창의성 인증학교로 지정되면서 MIE는 더욱 풍성해졌다. 권미도 교사는 "MIE에 대한 교사, 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지역 환경 실태 조사를 해 더욱 내실 있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학년별 수준에 맞춰 '참고 영화 목록'도 만들었다. 1·2학년은 '흥미롭고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영화' 28편, 3·4학년은 '상상력을 키우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31편, 5·6학년은 '교양 및 체험학습에 도움되는 영화' 28편 등 모두 87편(표 참조)이다.

박영배 교장은 "영화는 종합예술인 만큼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의 교육이 저절로 된다"며 그 효과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어릴 때 자기 생각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할 수 있어 창의성 교육에 가장 좋은 재료"라고 덧붙였다.

◆창의성 높이는 효과 만점

학교 수업에 영화를 활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많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의 학습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를 이용한다. 경일중학교 이혜경(43) 교사도 가정 수업에 영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주로 학기 초나 학기 말을 이용한다. 흐트러지기 쉬운 시기에 시청각 매체를 이용해 분위기를 다잡는다는 목적에서다.

지난주에도 여름방학을 앞두고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이용해 성폭력에 대해 교육했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중학생들이 탈선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였다. 수업은 이 교사가 영화를 보여주며 화면을 정지시킨 뒤 다음 장면이 무엇일지 학생들의 생각을 글로 쓰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거나 서로 돌려보며 뜻을 나눴다. 그리고 이 교사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에는 학생들 스스로 영화의 제목을 달도록 했다. 교사의 의도대로 지도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시간. "보통은 중학생다운 답이 나오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을 뛰어넘는 의견도 나온다"는 것이 이 교사의 설명.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를 교육에 접목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졌던 것. 지난해에는 발표 수업에서 '타이타닉'에 나오는 서양식 차림에 대해 수업을 진행해 1등급을 받는 경사도 생겼다. 이 교사의 MIE 노하우는 다른 1등급 수업과 함께 책에 실릴 예정이다. "내 방식이 보편·타당성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과 흥미와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활용 수업을 진행할 때 교사가 먼저 교육적 관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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