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잠시 잦아들어 얼른 산책길을 나섰다. 비 그친 맑은 하늘과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허리를 동여맨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수성못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경관이다. 감탄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생동하는 기운에 이끌려 발 밑을 내려다보니 과자덩어리를 끌고 가던 개미 부대가 산보객의 발길에 차여 대열이 무너지고 있었다. 흩어진 대오를 가다듬으며 족히 수백마리는 될 듯한 개미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개미들이 과연 저 과자를 무사히 아지트까지 운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으로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무질서하게 꼬물거리던 녀석들이 망가진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과자 부스러기를 운반하기 시작한다. 내입에서는 저절로 '영차 영차'소리가 나온다.
불가능한 일이나, 미련해 보이는 일이 천신만고 끝에 성공할 때 나는 눈물이 난다. 날씨도 흐리고 신나는 일도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들이 하루하루 이어지던 이번 주, 한편의 동영상을 보고 감동으로 훌쩍대며 살맛나는 인생을 배웠다. 허용된 것이 너무나 제한적이지만 마음껏 누리면서 주어진 인생을 즐기는 '닉 부이치치'라는 청년의 동영상을 보면서 기적을 떠올렸다. '난 아직도 기적을 믿는다'라면서 머리와 몸뿐인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그 삶 자체가 기적이다. 팔과 다리가 없고 작은 왼쪽발만 있는 닉이 TV를 켜서 만화를 보고 세수하고 면도하는 사사로운 일상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그가 CD를 작동해 "Don't Worry! Be Happy"라는 곡을 들으며 자신이 행복하다고 고백할 때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29세에 2만볼트 전기에 감전돼 팔을 잃어버린 석창우 화백이 의수 갈고리에 먹물을 묻힌 붓을 끼워 신들린듯 춤추듯 빠르게 크로키하는 시연 장면을 보면 또 다시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이렇게 그린 그림은 발가락 세 개만 남은 발로 낙관을 찍어 끝낸다. 용을 그린 후 마지막 눈동자를 그렸더니 실제로 용이 돼 홀연히 날아가 버린 '화룡점정'의 고사처럼 크로키 속의 그림은 우리들의 감동 속으로 생동감 있게 날아 들어온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 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라고 고백한 송명희 시인도 나를 울게 한다. 선천성 장애로 목도, 몸도 못 가누는 장애인으로 남보다 못 가진 것 너무 많지만 정상인들이 보지 못한 것, 듣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고백하며 행복에 겨워하는 그녀 앞에서 허용된 것이 많은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들으며 깨달을 수 있는지 되뇌어본다.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식량 부족으로 평균 체중 미만인 북한 어린이들을 보지 못하고,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라져가는 동식물의 비명을 듣지 못함은 내가 너무 많이 가진 탓이 아닐까?
정현주(고운미피부과의원 원장)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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