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없다.'
1998년 11월 28일 일본 가고시마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대표는 '어업에 관한 협정', 다시 말해 '신한일어업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은 헌법에 따라 1999년 1월 6일 국회비준동의를 받아 1월 22일에 '조약 제 1477호'로 발효되었다.
신한일어업협정은 동해에 있어 우리나라는 울릉도를 기점으로, 일본은 오키섬을 기점으로 해서 경계선이 그어졌다. 양측의 소유가 중첩되는 부분을 우리나라는 '중간수역', 일본은 '잠정수역'으로 부르며 공동의 관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간수역 안에 있는 독도는 섬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고, 아예 지도상에도 표식 자체가 되어있지 않다.
1997년 말에 불어닥친 우리나라의 IMF 금융대란. 그 전대미문의 국가 부도 위기로 당시 대한민국은 국가체제가 위협받을 지경이었다. 혼란의 와중인 1998년 1월 23일. 일본은 30년을 지속해온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통고해왔다.
새로운 어업협정을 맺지 않으면 어민들의 조업 혼란이 불가피했다. 그보다도 더 급한 것은 IMF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던 상황. 기갈이 들어 기진맥진한 사람 앞에 물자루를 흔들어댄 것. 우리 정부는 '을'의 입장인 채로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지 않을 수 없었고, 서둘러 협정서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정부는 이 협정의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과반수 찬성 표결을 거쳐야 하는 헌법과 국회법을 무시한 채, 표결 없이 국회의장 가결 선포로 처리해버렸다. 또 협정 합의 의사록 역시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사록은 아예 상정조차 하지도 않았다.
우리 정부는 무엇 때문에 위헌 논란까지 빚으면서 '신한일어업협정'의 효력을 서둘러 발생시켜야 했을까? 핵심은 한국과 일본 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Exclusive Economic Zone) 경계획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은 독도 영유권 문제에도 결코 이롭지 못한 예민한 사안이라는 것. 이 때문에 국민적 논란의 소지가 있어, 서둘러 조약을 발효시킨 것으로, 학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신한일어업협정 국회비준동의 당시 우리 정부는 영토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협정의 성격을 두고, 명칭과 전문 등을 실례로 들어, 어업에 관한 사항만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그 이유로, 신한일어업협정 제1조는 대상수역을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제7조와 부속서Ⅱ에서는 동·남부 중간수역을 제외한 자국 측의 협정수역을 배타적 어업수역이나 어업전관수역이라 하지 않고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한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신한일어업협정은 단순히 어업에 관한 사항만을 다루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이다. EEZ는 영토에 관한 문제이다.(이장희 교수 논문 '동해 중간수역문제')
영토주권 분쟁과 관련된 국제사법재판소 등의 판례에는 '실효적 지배'라는 개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실효적 지배는 어느 국가가 문제의 영토에 대해 평화적 실제적 계속적으로 그리고 충분하게 국가의 주권을 행사, 표시했느냐는 것이다.
일본은 독도를 두고, 17세기 80년간 일본 서해안 어민들이 울릉도에서 어로활동을 할 당시 독도를 중간 정박지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1905년에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편입했고, 강치잡이업자 나카이 등 일본 어민들이 어로활동을 했으며, 미일합동위원회에서 독도를 폭격지로 설정했고, 1951년 대일강화조약을 통해 독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를 했다고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있다.
한발 물러서서, 신한일어업협정이 단순하게 어업에만 국한된 협정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만일 중간수역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일어업공동위원회의 협의 결과에 따른 권고를 존중하여' 해결해야 한다.
한국이 중간수역으로 부르든 일본이 잠정수역으로 부르든 어쨌든 독도해역이 공동관리 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일본은 이를 근거로 독도 근해에서 어로활동을 했고, '그것은 실효적 지배의 한 증거'라고 국제사회에 떠벌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목말라 숨이 넘어가는 상황, 눈앞에서 흔들어대는 물자루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속마음에 없는 도장을 찍어버렸다. 물자루를 흔드는 자의 비열함을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날인은 날인으로 엄존한다. 우리 손으로 찍은 도장의 흔적을 어떻게 지워낼지, 그것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자의 고민이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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