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일본 기술자가 중국 자동차 부품업체에 스카우트돼 일하는 장면이 TV에 소개된 적이 있다. 중국 기능공이 늘 하던 대로 대충대충 마무리하자 지켜보던 그 기술자는 이곳저곳 지적하며 재작업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본 기술자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그 물건은 가치가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일본 제조업계 전반에 퍼져 있는 이런 장인정신을 대표하는 게 도요타의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 정신이다. 1989년 도요타가 미국 고급 차 시장을 겨냥해 '렉서스'를 처음 출시하자 '포천'지는 "중산층을 겨냥해 값싼 자동차를 만들어 온 도요타가 고급 차를 생산한다는 것은 맥도널드가 비프 웰링턴(고급 쇠고기 요리)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조롱했다. 정확히 20년이 흐른 지금 포천의 진단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노즈쿠리 정신을 몰랐던 것이다.
도요타는 바싹 마른 수건도 쥐어짜며 원가 절감에 열을 올리지만 품질 저하만큼은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물건 만들기에 대한 철학 때문이다. 모노즈쿠리는 그저 물건을 만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전문적인 기술로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정신도 포함된다. 이는 세계 제일의 도요타를 탄생시킨 생산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벤츠'BMW 등에 한국산 부품 비중이 점차 늘고 있는 가운데 난공불락이었던 도요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보도다. 꾸준한 품질 향상과 시장 개척 노력, 엔화 강세가 환경을 바꿔 놓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는 워런 버핏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철강회사'로 칭찬받은 포스코에조차 올 들어 처음 철강재 납품을 허용했을 정도다.
끊임없이 품질을 '카이젠'(改善)하는 도요타의 경영철학은 유별나다. 더 이상 개선할 게 없으면 개선하려는 자세를 개선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도요타의 눈에 그동안 한국산 부품이 눈에 찰 리 없었다. 완벽주의자는 끈질기고 꼼꼼하고 조직적으로 성취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심리학자 고든 플렛은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나 남에게 극단적으로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해 우리 부품업계가 해야 할 일은 '물건 만들기'가 아니다. 물건을 만드는 정신 개선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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