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가 망언 한마디 해 줘야 되는데…."
울릉도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다.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한마디 하면, 독도 오는 관광객들이 울릉도가 비좁도록 밀려들고, 정부도 크고 작은 공사를 무더기로 내려주니까 섬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소리다.
독도에는 요즘 거의 매일 공사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동도에만 공사 손님이 한꺼번에 29명이 체류하기도 했다. 동도 식구 모두가 46명으로, 그것도 한계치를 넘어 인원감축을 고민하는 판에, 그 많은 사람이 밀고 들어왔다.
밤이면 창고이건 발전기실이건, 심지어 겨울철 삽살개 집까지도 공사 인부들이 차지하고 눕는다. 경비대 조수기실은 24시간 바닷물을 끌어올려 식수로 만들어도 역부족이고, 아침이면 화장실마다 길게 줄을 서야하는 형편이었다. 공사가 이렇게 한꺼번에 몰리는 것은, 지난해 무더기로 계획한 공사를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준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연말 정부는 경북도를 통해 2009년 독도사업 31건에 301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 가운데 275억원은 국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독도경비대는 경찰청 사업계획에 따라 각종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고, 민간단체에서도 태양광발전과 통신시설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이들 사업은 당해 연도에 끝나는 사업도 있고 장기사업도 있다.
시행 주체별로 각각의 공사를 벌이다 보니 봄부터 가을까지 독도는 늘 공사일 수밖에 없다. 좁은 터에 50여년간 쌓았다 허물었다를 되풀이하다 보니 섬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기암괴석 절경에 시멘트가 더께더께로 발라져 방치되어 있고, 철근들은 삭은 채 나뒹군다. 독도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 우선적으로 시설물 공사부터 하고는 관리나 유지 및 보수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독도만큼 각종 법령과 기관단체의 이해관계 등이 한데 뒤엉켜 사업이 복잡한 곳도 없다. 관광객들이 동도 접안장에 내리면 은박지로 둘러씌운 폐수 배출관과 취수관 그리고 유류탱크 연결선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너저분한 흉물에 모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이 선들은 아무리 보기 흉하고 파도에 휩쓸려도 땅 속으로 묻을 수가 없다. 독도는 천연자원보호구역으로 지반의 형상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 문화재청이 땅파기를 허가해 주지 않는 것이다.
동도에 올라오는 방문객이라면 동도 어디를 가나 난마처럼 얽혀있는 각종 선들이 눈에 거슬릴 것이다. 지난달 경북경찰청이 수억원의 예산을 들여 선들을 닥트에 넣는 공사를 했지만, 손을 쓸 수 없는 관로나 선들은 아직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관청이나 민간에서 필요에 따라 선을 펼쳐놓은 탓이다. 이같이 얽힌 선들은 대한민국 행정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일본의 독도 망언으로 국내 여론이 들끓으면 온갖 대책과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고 잊어버리는 '땜질식 대책'이 독도 대책의 전부인 것이다. 매년 수백억원의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도 독도는 여전히 드나들기 힘들고 불편하다.
독도를 오가는 연락선의 접안율이 평균 60% 내외이다. 북서풍에 파고가 1.5m만 넘으면 배를 대기가 어렵다. 그런 날 관광객들은 먼발치에서 독도를 바라만 보고 돌아가야 한다. 독도 수호를 확고히 하려면 독도방파제 시설이 시급하다.
그러나 독도방파제는 몇 년째 조사에 조사만 거듭하고 있다. 이제 독도 사람들은 방파제를 설치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기조차 한다. 일본 총리가 망언 한 번 해줘야 한다고 수근거린다. 그런 마당에 동도 위령탑 부근에 100억원을 들여 독도관리현장사무소를 세운다고 한다.
그 지역은 과거 태풍 '매미'가 왔을 때 파도가 휩쓸어 지형조차 뒤바뀐 곳이다. 만약 방파제 시설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매미'급 정도의 태풍이 온다면 독도관리현장사무소가 온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지난해 정부는 총리실 산하에 독도대책팀을 신설했다. 독도문제를 전반적으로 조정·심의·관리하고자 하는 취지로 설립했다. 그러나 아직 독도 시설물공사나 행사 등에서 총리실 독도관리팀의 조정이 있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독도 시설물은 영구적인 영토수호대책의 타임 테이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해설서 파동이 났던 지난해 여름, 하루 여섯 번 연락선이 들어와도 독도 관광객을 모두 실어 나를 수 없었다. 올해 8월 관광객 수는 작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여름, 독도헬기장에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헬기가 내려앉을 만큼 국회의원이나 고위관료들의 방문이 잦았다.
올해 여름 아직 독도를 찾은 국회의원은 없었다. 지난해 여름, 독도경비대에 들어온 위문금은 거의 2천만원에 육박했다. 그런데 올해 여름에는 단 10만원만 들어왔을 뿐이다. 올해는 독도에 대한 특별한 이슈가 없었으니, 내년 공사는 올해의 절반이나 되려나…. 망언 좀 해달라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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