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쪽방촌 사람들 '최악의 여름나기'

경기침체 일감 줄고 비 오는날까지 많아 방안서 종일 지내

유난히 긴 장마로 쪽방촌 사람들의 근심도 깊다. 비가 내린 10일 오전 대구 동구 신암동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모씨가 좁은 방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유난히 긴 장마로 쪽방촌 사람들의 근심도 깊다. 비가 내린 10일 오전 대구 동구 신암동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이모씨가 좁은 방에 누워 낮잠을 청하고 있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경기가 나쁜 터에 비까지 계속 내려 올 여름은 최악이에요."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은 비가 야속하다. 비가 오면 유일한 생계 수단인 막일도 할 수 없고 도지는 신경통이 고통스럽다.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아 이들은 최악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비가 원망스러워요…

20일 오전 10시쯤 대구 동구 신암동의 한 쪽방촌. 너비 5m가량의 골목길을 따라 촘촘히 박힌 허름한 한옥들은 내리는 빗소리만 고요히 울릴 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사글세'라고 붙인 쪽지만 방문객을 맞았다. 작은 마당이 있는 한 쪽방촌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6개의 방이 나뉘어져 있었다. 6.6㎡도 채 되지 않는 방안에 들어서니 보슬비가 내리는 바깥과 달리 무더위로 숨이 턱 막혔다. 등줄기엔 이내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방안엔 낡은 선풍기 한대가 '덜덜덜'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방안의 더위를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앉은뱅이 탁자 위에 놓인 TV를 보고 있던 집주인 이모(52)씨는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하얀 약봉지를 주섬주섬 한쪽으로 치우더니 1인용 대나무 돗자리를 건넸다. "바깥보다 방안이 훨씬 덥지만, 그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야. 오후엔 비가 그친다고 하니까 운이 좋으면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겠지." 이씨는 올 여름에 하루가 멀다고 비가 오는 바람에 쪽방에서 꼼짝없이 갇혀만 있다고 했다.

인근 쪽방에서 생활하는 정모(64)씨도 "쪽방촌 생활이 벌써 25년이나 됐지만 이번 여름처럼 비가 많이 와 일을 쉬어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비가 오면 심한 신경통까지 도져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어. 올 여름은 비 때문에 완전히 공쳤어. 이런 벌이로는 겨울이 오면 쪽방에서도 쫓겨나 쉼터로 옮기거나 지하철 노숙밖에 할 게 없어."

대구 쪽방상담소 한 관계자는 "2003년 654명이던 대구의 쪽방 거주자는 2008년 현재 825명으로 크게 늘어났다"며 "대부분 공사판을 돌며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어서 올 여름처럼 긴 장마가 오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찜질방 유랑족까지…

올 여름 긴 장마는 쪽방촌 사람들을 찜질방으로 내몰고 있다. 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쪽방에서 쫓겨나 찜질방에서 기거하는 '찜질방 유랑족'들이 늘고 있다.

쪽방촌 인근에서 열쇠점을 하는 이모(40)씨는 "얼마 전 가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보니 문앞에 계절이 지난 허름한 옷차림을 한 40대 남성이 다짜고짜 1만원만 주면 가게 광고 전단지를 인근 아파트에 돌리겠다고 애원했다"며 "남자는 쪽방촌에서 쫓겨났는데, 1만원만 있으면 컵라면 두 개와 김밥 두 줄을 사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고 남은 돈은 찜질방비로 쓴다고 했다"고 전했다. 동구에서 찜질방 운영하는 박모(52)씨는 "밤 늦은 시간에 허름한 옷에 가방을 매고 찜질방을 찾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10명은 넘는다"며 "일반 손님들이 불편해 할까봐 걱정이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모른 척 하고 있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