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협약 100주년 '간도를 가다'
- 간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간도를 시작으로 만주 일대를 둘러봤다. 간도(間島)는 한반도에서 보면 두만강 건너편 지역으로 러시아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라고 부르는 곳이다. (중국은 만주를 동북지방, 간도를 연변 또는 연길지방이라고 한다).
간도에 머무는 동안 수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특히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은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있어 마치 성지 순례단 같았다. 독립운동 격전지나 고구려, 발해 유적지를 답사하는 학생들이었다.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윤동주 생가, 목익환 목사 출신학교 등이 있고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도 이곳에 있다. 현재도 85만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 간도는 예전부터 한국민족의 생활공간이었고 역사의 무대였다. 지금은 남의 땅, 중국의 영토가 되어 있지만 우리는 간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간도협약은 무효
간도의 크기는 불명확하다. 크게는 토문강-송화강-흑룡강 이남 지역으로 보기도 하고, 작게는 일본의 간도 임시파출소가 관할하고 당시 조선인이 거주한 지역을 가리키기도 한다. 넓게는 한반도의 3배 이상, 작게는 한반도의 약 5분의 1 정도의 면적이다.
1909년 9월 4일 일본은 간도협약을 통해 간도를 중국 땅으로 인정했다. 중국으로부터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광산개발권을 얻는 대신에 간도 영유권을 넘겨준 것이다. 전쟁에서 빼앗긴 것도 아니고, 우리의 주권이 행사된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넓은 땅을 중국에 내주었다는 것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다. 당시 조선은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협약 체결의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배경으로 간도협약 무효론이 등장했다. 물론 간도협약이 무효화 된다고 해서 간도가 우리 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협약 체결 이전의 상태 즉 영유권 미확정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최근 들어 간도협약이 무효가 되면 간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을사조약이 무효이기 때문에 일본이 체결한 간도협약은 원천 무효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이상, 현실적으로 이런 논의가 과연 수용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간도와 북한
북한과 중국은 1962년 조·중 변계(국경)조약을 체결해 국경을 재획정했다. 이 조약은 비밀조약으로서 체결 과정 및 배경 등에 관해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간도협약 이후 한국과 중국 사이의 국경을 획정한 가장 최근의 조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있는 두만강 지역의 국경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간도영유권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간도협약이 무효화되더라도 조·중 변계조약이 유효하면 간도는 중국 땅이 된다. 한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이 현실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조·중 변계조약의 무효를 입증하고 그 위에 간도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 정합성이 있다고 하겠다. 조·중 변계조약의 효력 문제는 북한의 국가성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조약의 불승계 내지는 무효를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기 때문이지만 UN 동시 가입, 국제사회의 인식 등에 비추어봤을 때 북한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간도문제는 북한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간도문제는 남북통일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간도협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이 조·중 변계조약을 체결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측으로서는 조선정부가 배제된 채 체결된 간도협약이 가진 불완전성을 해소하고 국경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조·중 변계조약은 기본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으로 하면서 두만강원(江原)을 홍토수(紅土水)로 하여 1887년 국경담판에서의 한국 측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고 있다. 미래에 간도협약이 무효화되더라도 조·중 변계조약으로 한중간의 국경문제를 일단락 지으려는 중국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압록강-백두산 천지(전체의 약 56%)-두만강(홍토수)이 한·중 간의 국경으로 되었다. 한국의 영토는 1909년의 간도협약 때보다는 확실히 넓어졌다. 특히 백두산과 천지의 일부가 한국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놓고 북한은 김일성의 업적으로 자랑한다. 간도협약 때는 한·중 간 국경을 압록강-백두산 정계비-두만강(석을수)으로 삼아 백두산 천지도 중국에 속해 있었다.
◆간도와 한반도 통일문제
간도 영유권 주장은 한반도 통일문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한반도 통일은 주변 열강의 협력이 필요로 할 것이며, 이때 간도 문제가 중국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통일될 경우 민족주의가 고양되고 간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더욱 강화·증폭될 것임이 분명하다. 통일한국의 출현이 연변조선족의 분리주의를 자극하면 다양한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에게는 국가분열의 계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간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간에는 심각한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2004년 8월 17일)은 "중국이 고구려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과거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의 동북(만주) 지방에 거주하는 200만명에 가까운 조선족 때문이다.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분리를 시도하면서 과거 고구려 영토를 한국의 일부로 요구할 가능성에 대해 중국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왜곡,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이 한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을 봉쇄하기 위한 예방 조치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어설프게 "간도는 한국 땅"이라고 외치면 간도 영유권도 확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통일문제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중국에 대해 간도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간도는 사람이 사는 땅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을 만나면 "지금 당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한국 땅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 땅이 되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어보곤 한다. 그들은 다소 머뭇거린 후 한결같이 "아니오"라고 답한다. 우리의 질문에는 간도에 대한 한국인의 역사적 정서가 묻어있으며 그들의 대답에는 간도의 현실이 담겨있다.
간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변 조선족문제다. 간도는 독도와 달리 사람이 대거 거주하는 땅이다. 간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간도 영유권문제는 단순히 영토를 확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생활공간을 확대한다는 의미로 다가설 필요가 있다.
연변 조선족이 간도를 한국땅으로 되길 원하지 않는 이유는 현재 누리고 있는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반대로 그들이 간도를 한국 땅으로 되길 원할 경우 중국 당국은 자치주를 폐지하는 등의 강경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간도에서는 한국어 및 한국 문화가 보존되기 어렵고, 조선족의 한국에 대한 정체성도 크게 변화한다. 간도와 한국의 연고성은 더욱 멀어질 것이며, 한국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도 약화될 것이다.
결국 간도 영유권 문제는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강력한 모국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국, 중국, 조선족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훗날 이뤄질 일이겠지만 대담한 제안을 한 가지 해본다. 통일 한국이 나진이나 청진항을 중국에 개방하고 동시에 간도를 개방하도록 하여 한·중자유지역으로 하면 어떨까. 동해로의 진출이 중국의 오랜 염원임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있는 제안이다. 이럴 경우 한국과 간도의 유대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간도를 실질적으로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다음 단계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과 교수·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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