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젠 멘탈이다] 지각

지각

사람들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 말에서 몇 개의 어휘를 생각해보자. '꽃'이라는 대상과 '본다'는 행위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이 떠오른다. 지각과 관련해 '꽃'과 '본다'에 국한시켜 보자. 외부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눈, 귀, 혀, 살갗, 코, 피부 등 오관을 통해 말초에서 들어오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닿는 자극을 대뇌의 해당 부위에서 과거의 경험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작업이다. 오관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대뇌에 전달하는 과정은 감각이며, 지각은 대뇌에 전달된 감각에 대한 해석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시각장애인에 대해 지각의 장애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밖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대뇌에서 잘못 해석하는 것을 착각이라 하고 자극이 없는데도 있는 것으로 지각하는 것이 환각이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뒤뜰의 대나무 잎이 바람결에 서걱거리는 소리를 칼 가는 소리로 듣는다면 착각이다. 세상을 구원하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먼 곳에서 아련히 들려온다면 환청이며, 다리가 절단되고 없는데도 그 다리에 달린 발가락이 가려운 것도 환각이다.

자극이 왜곡돼 경험하기도 한다. 음악 연주자들은 마리화나와 필로폰 등 마약이 음감을 좋게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경험의 심화이다. 감각과는 사뭇 다른 지각도 있다. 옛 소련에서 활동했던 불세출의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더 루리아가 수십년간 연구했던 셰레셰프스키라는 사람은 숫자나 단어를 눈으로 경험했다. '초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초록색 꽃병이 눈앞에 보였으며, '2'라는 숫자는 '흰색의 납작한 사각형'으로 인식했다.

경험과는 아예 무관한 지각도 있다. 죽은 사람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시체 썩는 냄새를 맡기도 하고 알코올 금단 환자들은 천장에 생전 보지 못한 괴물이 어슬렁거리고 이불이나 살갗에는 지네도 아니고 개미도 아닌 징그러운 미물들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본다.

어떻게 해서 이런 희한한 현상이 생길까? 많은 대뇌 질환에서 착각과 환각이 발생하고 환각제 외에도 많은 약물들이 지각 장애를 일으킨다. 치료 약물 중에도 부작용으로 환시가 발생하는 약물들이 비일비재하다. 유령감각은 대뇌질환이나 약물과도 무관하고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은 환시를 경험하지 않는다. 때문에 지각 장애와 관련된 뇌의 특정 부위나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적시하기가 아직은 오리무중이고 오직 설익은 이론들만 분분하다.

박종한 대구가톨릭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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