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詩」/ 손진은

바람이 불 때

우리는 다만 가지가 흔들린다고 말한다

실은 나무가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심연의 허공에 뜨거운 실체의 충만함을 남기는.

도취와 나태 속에 취해 있는 듯 하다가도

그림을 그리듯 하늘에

기하학적인 공간을 각인하는 나뭇가지

처음엔 가질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덧 그 흔들림 관찰하는 나무의 눈

마침내 눈의 중심과 흔들리는 가지가

하나의 사이로 존재할 때

현기증나는 그 공간과 시간을 채우며

숨쉬고 물결치며 팽창하는 언어

완벽한

그러나 무익한 듯 보이는

물질적인 문장의 향기

그 힘으로 나무는 날아가는 새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힐끗거리며 지나는 구름 얼굴 붉히기도 하고

나무의 섬세한 움직임이 문장의 물질성과 결합되었다. 그리하여 나무와 언어 사이는 거미줄처럼 촘촘해졌다. 거미줄에 포획된 것들을 헤아려가면 이 시가 실린 시집의 깊고 아름다운 사유와 만나게 된다. 손진은의 첫 시집「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에 가득찬 인문학적 상상력은 가히 모든 사물과 사물의 본질에 붙인 명사와 동사의 사전이라 할 만하다. 꽃으로 상징되는 김춘수 시의 어떤 존재론적 사유가 손진은에게 와서 다시 언어와 인문학이 결합된 꽃을 피웠다. 그 꽃들은 가끔은 나무이거나 가끔은 숲이거나 가끔은 언어이기도 하다. 손진은 이 두 번째 시집에서 인문학과는 다른 길을 갔을 때의 탄식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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