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며칠 후 이강철 전 청와대수석과 여의도 국회 앞 단골 밥집에서 점심을 한 적이 있다. 정치적 불운아였던 그에게도 역할이 주어질 것이란 기대는 했지만 그날 대화는 그전과 다를 게 없었다. 식사 후 그가 임시로 쓰던 사무실까지 같이 걸었다. 밥집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개중에는 90도에 가까운 절을 하며 친근감을 보이는 이도 적잖았다.
이전 그 길에서 그에게 아는 체를 해온 사람은 드물었다. 있다 해도 눈인사가 고작이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대접이 달랐다. 그 후 같은 동네인 마포에서도 가끔씩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손님이 많을 땐 불판조차 같이 써야 하는 돼지껍데기 구이집에서는 내놓고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석쇠를 나눠 쓴 사람조차 눈인사만 할 뿐이었다. 서로 아는 체를 한다고 이득을 나눌 일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종증권 항소심 재판부가 노건평 씨에게 '동생을 죽게 만든 못난 형'이라고 꾸짖었다. '돈 있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 공직 후보자에게 나눠주는 봉하대군의 역할을 즐겨했다'고 했다. 노 씨를 '해가 떨어지면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는 시골 늙은이의 외양을 하고 있다'고 비유했다. 휠체어에 탄 노 씨도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의 훈계를 들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의 가족 중 감옥살이를 한 이가 적잖다. 동생, 형님, 아버지, 삼촌 등의 관계를 내세워 돈을 챙겼다가 감방 신세를 졌다.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그들에게 사람들은 욕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을 주고 대신 무엇을 받아 챙긴 사람들은 잊혀졌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지역 출신 어느 분은 '권력은 칼과 같아 쓰면 쓸수록 베일 일도 많아진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고록 성격의 책이 출간됐다. 회고록을 쓸 양으로 목차를 포함, 대강의 구성까지만 적어 둔 대목을 시작으로 정치와 권력, 도덕성과 돈, 언론 등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고민과 생각을 엿보게 해주는 글을 모았다. 방심과 부주의가 믿음과 희망에 상처를 입혔다는 소제목의 귀퉁이에는 '보통사람들은 정치인만 보면 욕을 하다가도 자기 동네에 무슨 혼사가 있으면 축사를 해달라고 한다'는 말도 남겼다. 권력의 실패는 과연 그들만의 몫일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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