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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선생 위업기리는 '왕산기념관' 28일 개관

사진 허위선생 기념관
사진 허위선생 기념관
허위 선생 흉상
허위 선생 흉상

구한말 항일의병장을 지낸 왕산(旺山) 허위(許蔿·1854~1908)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왕산기념관'이 28일 개관됐다.

왕산기념관은 2007년 국비 등 39억4천만원으로 추진돼 허위 선생의 고향인 구미시 임은동 9천717㎡ 부지에, 연면적 1천950㎡(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개관식에는 허위 선생의 장손자인 허경성(82)씨 등 유족과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비롯한 기관단체장, 시민 대표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기념관에는 추모시설과 전시실, 영상추모관, 시청각실, 도서자료실, 열람실이 마련됐으며, 유족들이 보관하던 허위 선생의 건국훈장과 병풍, 교지, 만장, 사진, 도서 등 각종 유품과 자료 51점이 전시됐으며, 운영은 (사)왕산기념사업회가 맡는다.

구미시는 2007년 기념관 건너편 생가 터에 '왕산기념공원'을 조성했으며 금오산도립공원에 세워졌던 허위 선생의 유허비도 기념관 앞으로 옮겼다. 또 기념관 인근 도로를 '왕산로'라 이름 붙였고, 기념관 부근에 신설된 초등학교 이름을 왕산초등학교로 바꾸는 등 허위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황동을 벌이고 있다.

허위 선생은 1854년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나 을미년(1895년)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다음해인 1896년 김천 장날에 의병을 일으켰다. 이어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켜 13도 연합 의병부대를 결성하고 총사령관을 맡아 경기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수 차례 교전을 벌였으며 다음해 서울로 나아가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해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다 체포됐다.

그는 "나라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랴/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 죽은들 어이 눈을 감으랴"라는 유언을 남긴 후 1908년 10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순국 후 그 일가와 가족들은 만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몸바치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 했으며,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구미·정창구기자jungc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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