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박찬호(36·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불펜에 꼭 필요한 존재로 탈바꿈했고 추신수(27·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타선의 핵으로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 이번 주말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정규 시즌이 끝나는 가운데 시즌 전만 해도 활약에 물음표가 달렸던 박찬호와 추신수는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09시즌 개막 전 박찬호의 위치는 상당히 불안했다. 자신은 그토록 원하던 선발 투수로 뛸 곳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마무리 투수로 뛸 수 있느냐는 의사를 타진한 구단이 몇 곳 있을 뿐. 지난 시즌 우승팀 필라델피아에 둥지를 틀 때도 팬들만큼이나 지역 언론들의 반응 역시 호의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으로서는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찬호는 올 시즌 선발 투수로 자리 잡는다는 꿈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그의 입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9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가기 전까지 불펜에서 안정적인 경기 운영(3승 3패, 평균자책점 4.43)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필라델피아의 마무리 브래드 릿지가 계속 흔들려 박찬호가 돌아오면 포스트시즌에서 뒷문을 지키게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다.
릿지는 올해 31세이브를 거뒀지만 8패에다 평균 자책점도 무려 7.38에 이를 정도로 흔들리는 상태.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의 일등 공신이 올 시즌엔 팀의 최대 약점이 되어버렸다. 반면 박찬호는 마무리 경험이 거의 없지만 다른 마무리 후보군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 메이저리그 16년차의 노련함과 다양한 구종, 수준급의 구위를 가졌기 때문. 팀도 그의 복귀를 애타게 바라는 상황이다.
추신수의 약진도 놀랍다. 추신수는 미국 진출 이후 줄곧 공·수를 겸비한 유망주로 평가받았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해 오랜 마이너리거의 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난해 깜짝 활약으로 큰 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올 시즌에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당당히 일어섰다. 팀이 부진한 탓에 가을잔치에 초대받지는 못하지만 클리블랜드의 신세대 4번 타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30일까지 추신수가 기록한 성적은 타율 0.303에 19홈런, 20도루.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동양인 타자 최초로 호타 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교한 타격 솜씨와 힘, 빠른 발을 갖춘 전천후 타자의 위용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투수 출신임을 과시라도 하듯 외야 수비에서도 틈이 날 때마다 강한 어깨로 장거리 송구 능력을 보여준다.
한물간 투수라는 비난을 딛고 선 박찬호는 생애 첫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낄지도 모른다. 현재 필라델피아의 전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 추신수에겐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스즈키 이치로에 밀려 찬밥 신세였던 것도 과거사가 됐다.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낸 이들에겐 역시 길이 열리는 법인가 보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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