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사 정현주의 휴먼토크]역지사지

요즘 치아건강이 오복 중 하나임을 통감하고 있다. 나이 오십 가깝도록 스케일링외에는 치과 한번 가본 적 없는 건치를 가진지라 평소에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 그 흔한 충치도 없었고 잇몸도 한 번 시린 적이 없어 은근히 치아 구강 건강에 자신하며 살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작은 아들이 음식물 씹을 때마다 치아가 아프다며 치과에 가보자고 종용하였다. 크고 작은 치아 문제로 치과를 드나드는 남편 앞에서 우쭐대며 "아빠 닮은 모양이다. 엄마는 이날 이때까지 치과 한번 간 적 없는데"라며 아들을 타박하고 그날 오후에 치과를 방문하였다. 아들의 구강 검진과 방사선 촬영을 마친 후 평소에도 막역하게 지내는 치과 원장의 진단은 의외로 사소하여 간단한 시술로 치료를 마무리지었다. 붐비던 외래가 잠시 뜨음하기에 "나도 한번 검진 받아 볼까요? 별 이상은 없고요, 이따금 과로하면 우리하게 통증을 느끼는 치아가 있어요"라며 대수롭잖게 무시무시한 치과 검진 의자에 앉았다. 나의 치아를 검진하던 지인 원장님이 화들짝 놀란다. 전면 두 개의 치아 위에 엄지 손톱만한 농양이 자리 잡고 있는 방사선 사진을 들이밀며 평소 증상이 없었는지, 또 이렇게 크도록 몰랐는지 안타까워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발치하고 치아이식을 하는 어마어마한(?) 대수술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며 큰 병원에 의뢰해주었다.

그날부터 고통스런 치과 치료가 시작되었다. 나의 주치의는 성실하고 꼼꼼한 분위기를 가진 얌전하고 조신한 여선생님이었다. 치아를 보존하면서 농양을 배농하는 과정에서 한 시간 이상을 입을 벌린 채 나를 위협하듯 각종 기구들이 희고 예쁜 손에 들린 채 눈앞으로 왔다갔다했다. '덜덜, 끽끽, 삑삑, @#$%&…' 이 세상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소음을 다 모아 놓은 듯한 다양한 소리들이 귀에 익숙해질 무렵, 식도로 침과 함께 넘어가는 불쾌한 맛들의 소독약을 포함한 정체불명의 액체들은 가히 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렇듯 불편한 경험의 치료를 완치의 기대로 가까스로 버텨나갈 무렵이였다. 그날 치료는 유난히 길고 힘들었는데 예쁜 주치의 선생님이 "요번 주로 치료 종결하려 했는데 치주에 염증이 새로 생겨 내복약 복용하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치료 도중 경과가 나빠졌다는 설명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며 예약을 잡으러 안내데스크에 갔더니만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를 한다. 꼼꼼하게 나를 치료해주시던 명의 주치의 선생님이 병원을 퇴직하셔서 주치의가 바뀐단다. 식당도 가던 집만 가고 미용실도 같은 직원만 찾는 주변머리 없는 내가 하물며 신뢰하던 주치의를 잃었으니 얼마나 상심하였겠는가? 게다가 상태도 호전되지 않고 있으니 더더욱 불안하다. 그리고 서운하다. 그래도 한 달 가까이 입을 벌리며 속살(?)을 다 보여 주었는데 예쁜 우리 주치의는 한마디 작별 인사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가버렸다. 애꿎은 예약 직원에게 속절없이 깐깐하게 굴었다.

내가 의사 된 지도 스무 해가 넘었다. 그동안 나도 많은 환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은 무심함으로 예기치 않은 상처를 많이 주었을 것이다. 내가 환자가 되어 보니 조금만 배려하면 치유될 수 있는 상처가 많았다. 한마디 말에, 한번의 손길에, 한바탕 웃음에 의술보다 더 영험하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비결이 숨어 있음을 내가 환자가 되어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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