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길옆에 간이 제단을 만들던 중 누군가 "어! 혹시 이게'''" 하며 가리킨 곳에 15년생 산삼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오늘 처음 심마니산행에 따라나선 왕초보. 첫 심을 축하하며 어수선한 사이 저쪽에서 일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5엽이 분명한 어린 5행삼. 안개 자욱한 폭포 옆 절벽에나 있는 줄 알았던 산삼이 스스로 신비를 털어내며 산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 장화'군복 차림에 이상한 연장
지난달 20일 오전 5시 30분 서대구IC에서 전문 심마니 박활(산삼감정위원)씨와 신태규(산삼골심마니 대표)씨를 만났다. 긴머리에 꾸밈이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말 그대로 자연인의 모습이었다. 오늘 산행지는 충북 괴산의 군자산. 대구'울산지역의 심마니동호회원들이 6대의 차에 나눠 타고 중부내륙고속도를 달렸다. 산을 거칠게 타는 심마니들의 특성상 그들의 복장과 장비가 무척 궁금했는데 차에서 내리는 회원들을 보니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태반이 고무장화에 군복을 입었고 손엔 지팡이와 곡괭이를 조합한 듯한 '연장'을 들고 있었다. "뱀'독충 예방엔 장화가 최고죠. 가시밭길을 밀고 올라가는 데는 군복만한 게 없습니다. 심마니에게 패션은 없어요. 실용만 있을 뿐이죠." 박활씨가 들려준 심마니의 패션철학.
산행의 시작은 산신제부터. 어인마니(심마니 리더) 박활씨가 산 밑 평지를 찾아 적당한 곳을 물색하며 회원들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이 산비탈 근처에 30, 40년 전에 인삼밭이 있었다고 하니까 발밑 잘 보고 다니세요." 제단 터를 고르기 위해 바로 길옆에서 풀을베던 황윤곤씨가 산삼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덕분에 산삼을 발견한 장소가 제단이 되었고 회원들은 정성껏 술을 부으며 지성을 드렸다.
우리가 오른 산은 군자산과 오봉산 경계지역. 계곡 중심에 베이스캠프를 치고 모두 6개조로 나누어 좌우측 사면(斜面)을 타기로 했다. "7부 능선의 그늘진 곳, 습기가 적당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을 공략하세요." 신태규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 그늘 지고 바람 잘 통하는 곳
취재진은 베이스캠프에서 무전기로 교신하며 채심 신호가 오면 현장으로 출동하기로 했다. 한 시간도 채 안 돼 바로 인근에서 무전이 터졌다. 박씨와 허겁지겁 뛰어가 보니 아뿔싸! 아까 첫 삼을 캤던 초심자가 또 일(?)을 저질렀다. 이번에는 10~15년산 세 뿌리였다. 박활씨 주도로 채심이 이루어졌다. "채심의 요체는 잎, 줄기, 뿌리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죠. 바깥에 나온 심은 이끼를 깐 후 보관함에 넣으면 채심이 끝납니다."
심을 본 조(組)를 다시 계곡으로 올려 보내고 우린 부근을 다시 수색하기로 했다. 산속엔 가시덤불이 지천으로 깔려 등산화며 재킷이 수도 없이 긁히고 올이 빠졌다. "산 속에서 포인트가 정해지면 오직 직진만 있습니다. 가시덩굴이 나오면 낫으로 베어가며 그저 밀고 올라갈 뿐이죠. 그럴 땐 미제 군복이 최고입니다."
회원들 태반이 밀리터리룩을 입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박활씨는 수시로 마대(곡괭이와 지팡이를 조합한 도구)를 치며 심마니들과 신호를 주고받았다. 멀리 있을 땐 금속으로 쳐서 소리를 멀리 보내고 가까이 있으면 막대로 나무를 쳐서 연락을 한다. 이 소리만 듣고도 서로 위치 확인, 심 발견 여부, 긴급 상황 발생 등 소통이 모두 이루어진다. 잠시 후 왼쪽 계곡에서 마대 치는 소리가 났다. "딱! 딱! 딱!" 세 번. 심을 보았다는 신호다. 이번에 발견된 산삼은 4구(잎줄기) 3엽(잎)이었다. 10년을 약간 넘긴 걸로 추정됐다. 먼저 산신께 제를 올리고 연장을 꺼내들었다.
인근 계곡을 다시 한 번 수색할 것을 주문하고 우린 계곡을 따라 다시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숲 곳곳엔 야생화가 화원을 이루었다. 덩굴식물인 어름은 지천으로 널렸다. 어름을 몇 개 따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내려서는데 까치독사 한 마리가 발밑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장화도 안 신었는 데 한걸음만 더 내디뎠어도'''.' 정신이 아찔했다.
"산에선 뱀을 수시로 만납니다. 우린 오감(五感)을 열어놓고 산행을 하기 때문에 웬만한 동물들의 움직임은 감지됩니다. 능선에는 칠점사들이 많은데 이놈들은 펄쩍 뛰어서 허벅지를 물지요. 이럴 땐 장화가 무용지물입니다. 요즘 신세대 산꾼들은 해독주사까지 준비하기도 합니다." 뱀 소동을 뒤로하고 캠프로 다시 돌아오니 회원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다.
◆ 10년 이상 돼야 상품 가치
오늘 채심은 총 20뿌리. 그 중 10뿌리는 상품성이 없는 미삼이고 값이 매겨지는 10년 이상 삼은 10뿌리. 어인마니를 비롯한 베테랑급 4명은 단 한 뿌리도 캐지 못했다. 첫 산행에 나선 초심자들이 절반 이상을 캐면서 반란(?)을 연출했다. 박활씨는 "오늘 캔 심들은 야생삼에 가깝습니다. 옛날에 인삼밭에서 새들이 씨를 물어다 퍼트린 것이 1, 2대를 넘긴 것들이 대부분이죠" 라고 덧붙인다.
돌아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품평회를 겸한 자축파티를 열었다. 미삼 열 뿌리는 믹서로 갈아 즉석 산삼주를 만들어 돌렸다. "이걸 한잔 하시면 심마니 부인들이 왜 바람이 안 나는지 오늘밤 확실히 느끼실 겁니다. 한 기자도 '헛바퀴' 그만 돌리시고 우리와 '진짜 산' 한번 탑시다." 심마니들의 짓궂은 웃음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진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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