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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동의 전시 찍어 보기] 석재 서병오 작 '노매(老梅)' / 대구화랑 상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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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미술제가 열리고 있는 문화의 거리와 이웃하며 향교를 향해 난 길을 들어서 대구초등학교 뒷담을 따라 오르면 간간이 표구점과 옛 점포들이 남아있는 사이에서 오래된 화랑 한 곳을 만난다. 빛바랜 흰색 벽의 건물 정면에 '大邱畵廊'이라는 황동 글씨가 한때 문화가의 주목을 받았을 법한 모습으로 아직 빛을 발하고 있다. 작고 단아한 건물의 내부는 정갈한 쪽마루 바닥의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미술과 서화가 공존하고 있다. 서화라는 우리말을 제치고 미술이란 외래어가 들어온 역사만큼 한묵의 전통은 우리 생활로부터 멀어져버렸지만 이곳은 서양 미술이 걸린 벽 한쪽에 큰 매화 그림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이채롭다.

구한말 영남 제일의 서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사계 최고 권위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일화들을 남긴 서병오의 작품으로 한 눈에 봐도 그의 명성에 걸맞을 만한 수작임에 틀림없다. 글씨와 그림, 곧 서화(書畵)에서 빼어난 솜씨 못지않게 출중한 문장을 지녔다는 그는 대가답게 방대한 양의 유묵을 남겨 그 사실을 입증하는데 모든 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시문에 능하여 팔능거사란 별명을 얻었다 한다.

이 보기 드문 대작은 필묵을 쓰는 그의 활달한 기량과 시제에 대한 의취가 유감없이 발휘된 걸작이다. 그림 하단 왼편에서 사선 방향으로 힘차게 뻗어 올라간 매화 한 그루가 고창한 기운과 함께 서기가 감돌아 절로 기품이 넘친다. 나뭇가지를 묘사할 때의 운필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절묘한 꺾임이나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힘찬 필획마다 단호하면서도 저절로 시흥에 도취한 듯 몰입한 순간의 간결함이 있다. '근원 수필'에 '매화는 늙어 그 등걸이 용의 몸뚱이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위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데 멋이 있다'고 했는데 꼭 그런 형세다.

정묘년(1927년), 그의 나이 65세 원숙기에 나온 작품이며 이 해는 대구 최초의 역사적 서양화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O과회'가 창립되던 때이고 서동진이 첫 서양화 개인전을 열던 해이기도 하다. 문화의 신구가 교차되는 당시의 대구는 비록 일제의 압제 아래 식민지의 고통을 앓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긍지와 자존심만은 더없이 높았을 것 같다. 차고 외딴 곳 홀로 피는 늙은 매화나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심회가 쓸쓸해 보이지만 결코 굽히지 않았을 기개를 떠올리니 후세의 마음 한편도 같이 아리다. 김항회 대표의 남다른 석재 예찬론이 있어서 더욱 공감이 간다.

미술 평론가(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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