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친 묘가 사라지다니…어떻게 이런 일이"

벌초가니 흔적도 없어, 추적단서 전무

"혹시 제 선친의 시신을 보신 분 안 계십니까?"

김영찬(68·대구 수성구 상동)씨는 요즘 선친의 시신을 찾아 대구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관공서는 물론 화장장도 몇 번이나 찾았다. 이렇게 기약 없는 시신 찾기는 추석을 2주 앞둔 지난달 20일 시작됐다. 김씨는 이날 오후 3시쯤 대구 수성구 욱수동 산 98번지에 위치한 선친의 묘에 벌초하러 갔다 산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앞서 4월 16일 문안 인사차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산소였다.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나 들짐승의 소행인가' 싶어 일단 벌초를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의 흔적이 나타났다. 봉분 주위의 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삽 자국이 보였다. '누군가 산소를 잘못 알고 이장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이튿날 경찰과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그러나 '사람이 한 일'이라는 결론 말고는 단서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이때부터 김씨는 동사무소와 수성구청, 동구청, 경산시청 등을 돌며 묘 이장 신고가 있었는지 살폈다. 동사무소에 4건이 신고돼 있었지만 같은 지역이 아니었다. 산소 주변과 주변 체육시설 구역에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감무소식. 김씨는 "풀밭에서 바늘 찾는 심정"이라며 허탈해 했다.

추석 전날에는 장례사 3명과 함께 산소를 파 보기까지 했다. '봉분만 없앤 뒤 잘못 판 것을 알고 흙만 다시 덮었을 수도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허탕. "관 조각 하나 없이 깨끗하더군요. 분명히 누군가 조상의 묘로 착각하고 정성스레 모신 것 같아 기분은 조금 풀렸습니다."

김씨가 추정하는 이장 시기는 6월 말~7월 사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선친의 묘를 찾은 것이 4월 중순이고, 입구에 다시 수풀이 우거져있는 데다, 이 시기가 윤달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분명히 착오에 의한 일인 만큼 원망도 않고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그저 선친의 시신만 찾으면 됩니다."김씨는 "최선을 다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조상님이 화를 안 낼 테니까요"라며 자조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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