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주부들
최근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만났다. 주택가에 자리 잡았지만 일상에서 아주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냥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 불면 바람소리와 하늘의 깊이를 잴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이내옥 국립대구박물관장은 서울에서 지인이 찾아오면 구경시켜 주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타 지역에서 손님이 오면 꼭 이곳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그만큼 자랑하고 싶은 공간이라고들 한다. 수성구 중동의 주택가에 있는 갤러리가 바로 그곳이다. 뻥 뚫린 하늘과 들풀과 물이 마주하는 독특한 구조의 야생화 갤러리다. 건축가 이현재씨의 세련된 감각과 여주인의 안목이 한데 어우러져 전체가 작품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갤러리 주인은 그냥 살림만 해온 주부다. 꽃에 대해 강의를 한 적도 없고 꽃을 전시한 적도 없는 그런 주부다. 야생화가 좋아 꽃을 키웠고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 갤러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 주부의 열정과 꽃에 대한 사랑이 '아름다운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갤러리가 값진 이유다.
취재를 하다 보면 대구에는 무서운 실력의 고수 주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림의 고수들이다. 비록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 수준이나 내공은 전문가 뺨친다. 오히려 열정과 창의성은 프로보다 한 수 위다. 그들은 세련된 감각과 순수한 열의와 축적된 지식으로 구석구석에서 향기를 피워 내고 있다. 그들로 인해 대구가 깊어지고 넉넉해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다.
그들은 살림에서부터 요리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조용하지만 크게 활동하고 있다. 살림의 여왕 이효재씨가 주부의 전문성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었듯이, 대구의 고수 주부들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그들만의 세계를 조금씩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재주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이어서 자꾸 밖으로 삐져나와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고수 주부들은 한결같이 이 정도의 수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살림살이 틈틈이 한 가지를 수십년 붙잡고 있으면 이룰 수 있는 단계라고 한다. 다만 스스로 즐기고 그 즐거움을 이웃과 함께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단다. 겸손하기까지 하다.
고수 주부들에 의해 대구의 명물이 하나씩 태어나고 있다. 아주 반갑다.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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