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붓 가는 대로…무의식으로 그려낸 '공간'

신안미술관 2009 특별기획 김호득 '흔들림, 문득…'展

▲김호득 작
▲김호득 작 '흔들림-문득'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간다는 작가 김호득(59). 술을 마실 때에도 죽을 각오를 하고 마신다는 그에게 정말 죽음이 문턱에 다가왔다. 지난봄 불현듯 찾아온 암 선고. 하지만 작가는 "죽음이 친구처럼 따라다녔기에 별스러울 것도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이 끝난 뒤 그는 지난 일년간 준비해 온 전시 작업에 다시 몰두할 수 있었다. 시안미술관(관장 변숙희)이 2009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김호득의 '흔들림-문득, 공간을 느끼다'전 개막을 하루 앞둔 9일, 가을 햇살 가득한 미술관 뜨락에서 작가를 만났다.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작가는 문득 공간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기자는 그의 작품에서 '삶과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호득 역시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깔려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왜 이렇듯 무거운 이야기를 택했느냐는 물음에 "무거운 게 아니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비로소 올바로 사는 것이다. 그걸 잊고 사니까 문제"라고 답했다.

김호득은 지금껏 의고한 필묵기법의 파격, 전통의 파기, 나아가 작가 스스로 파괴자가 됨으로써 비로소 새롭게 탄생하는 창조의 역설을 보여주었다. 스스로는 "최대한 못 그리려고 애썼다"고 표현한다. 무언가를 그리려고 의도하기보다는 한지를 대하는 붓의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려낸다는 의미이리라. 의식하지 않은 붓 터치가 쌓이고 모여서 공간과 의식을 창조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깊이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을 모자람없이 보여주고 있다. 마치 시안미술관의 공간은 김호득의 작품을 위해 존재하는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종이반죽을 주먹으로 움켜쥐고 바짝 말린 뒤 전시해 놓은 작품에 대해 작가는 '미이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생명이 빠져나간 절대 고요와 정지의 공간. 2층에 꾸며진 '마른 연못'에는 난로 위 돌판에서 납작하게 구워낸 종이반죽이 둥둥 떠 있다. 생명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3층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나란히 수직으로 드리워진 수십 장의 거대한 한지 아래 먹물을 담은 수조가 마련됐다. 은은한 조명 아래 비춰지는 수조 속 공간은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하다. 그것은 무의식의 세계일 수도 있고, 이승과 대비되는 저승의 개념일 수도 있다. 불현듯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호득은 현재 영남대 미술학부 한국회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포스코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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