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 다닐 때 학생들은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들고 다니는 근사한 책은 지금의 센스 있는 액세서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때 우리들 손에 흔히 들리던 책 중에 하나가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 그에 의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시대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다름 아닌 질투가 아닐까 한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그래서 자신의 몸이 상하게 되고, 가까운 사람을 잃으면서 고립되어 가는 병, 질투야말로 서서히 조여오는 자살이며 죽음의 주범일 것이다.
질투란 가까운 사이에서만 생긴다. 우리는 슈바이처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아는 사람이 노벨상을 받으면, 내가 찾은 흠집을 가지고 그 수상에 반론을 제기한다. 물론 늘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단짝 친구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친구 앞에서는 축하해 주지만 돌아서서 혼자 쓸쓸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질투로 가는 지름길은 비교인 듯하다. 비교는 우리 사회에 아주 뿌리 깊게 형성되어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은 자녀를 타인과 비교해가며 교육시키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체면'과 '명분'에 예민하다고 했다. 이 지적을 남의 일로만 치부해 넘기기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옆집 아들은 착한데, 너는…" "누나는 잘하는데, 너는…"이라는 소리를 예사롭게 내뱉는다. 오죽하면 가상의 만능인인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나왔을까?
우리는 흔히 남과 비교하며 따라한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보면 그 내용에 대한 의견보다는 드라마에 나온 의복이나 소품을 어디서 샀느냐는 질문들이 다수이다. 어느 누구도 미모를 내세워 생활하는 사람만큼 예뻐야 하고, 맵시 있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만큼 늘씬해야 하며. 목소리로 돈을 버는 사람만큼 목소리가 고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 현장에서는 내가 남과 다른 처지임을 너무 자주 잊고, 남과 같이 되고자 한다.
유학 시절, 낯선 땅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내가 진짜 우수한 학생이었는가 하는 의심이 일었다. 남보다 타인의 눈에 민감해서 칭찬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공부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방과 후 전원이 청소를 했다. 60명이 한꺼번에 청소를 하는 일은 늘 번잡했다.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일은 바닥 걸레질이었다. 그때 나는 양동이에서 걸레를 빨아주고 학생들은 발로 그것을 밀고 다녔다. 당시는 고무장갑도 없었다. 나는 그 구정물에 새카만 걸레를 빨아주는 일을 내 일인 줄 알고 했다. 반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남에게 칭찬 듣고 싶어서였는지 싫은 줄 모르고 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도 분명 그 일을 싫어했어야 마땅하다. 어린아이가 남의 칭찬에 익숙해서 그런 일을 싫은 줄 모르고 했다면 너무 가엾지 않은가?
내가 프랑스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나를 형성시켜 나갔다. 혹자는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경쟁이 되지 않아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교 대신에 모든 일을 우선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 일을 하는 데 내 가능한 모든 시간을 투여했는지, 내 신체 에너지는 다 소모되었는지를.
어머니는 늘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셨다.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는 뱁새이고, 어느 분야에서는 황새이다. 자신이 하는 일 가운데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부터 골라내어야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결단이 죽지 않는, 아니 제 수명을 사는 지름길이다. 하늘이 드높고 코끝에 스치는 가을 바람이 신선하다. 올해는 과일도 풍년이다. 그리고 내게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다. 무엇을 더 바라고 남을 곁눈질하랴?
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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