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⑮ 청송 달기약수 한방백숙

토종닭·약수에 한약재까지…사계절 국민보양식으로 그만

가마솥에 들어가기 전 달기한방백숙 재료인 닭고기와 한약재.
가마솥에 들어가기 전 달기한방백숙 재료인 닭고기와 한약재.
다양한 장아찌와 함께 낸 달기 한방백숙 상차림이 깔끔하다.
다양한 장아찌와 함께 낸 달기 한방백숙 상차림이 깔끔하다.
숯불에 석쇠로 구운 닭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숯불에 석쇠로 구운 닭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단풍철이 시작됐다. 아직 늦더위가 다 가시진 않았지만 아침저녁 바람은 소슬한 게 가을 빛이 완연하다. 닭백숙 하면 일반적으로 삼복지간 음식이라 치지만 진짜 닭맛을 아는 미식가들은 그렇지 않다. 찬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지는 이 때 닭다리를 뜯는 맛을 최고로 친다. 예부터 서민 보양식품으로 널리 애용돼 온 닭백숙은 뭐니뭐니해도 청송읍 부곡리 달기약수터 한방백숙이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않는 '닭익는 마을'엔 상탕 중탕 하탕 등 약수가 분출되는 약수터 주변에 크고 작은 약수백숙집 40여곳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철이면 피서 온 사람들이 개울가 주변에다 가마솥을 걸어 두고 약수를 떠와 닭을 삶아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을 땐 무명 천막이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개울 전체를 하얗게 뒤덮기도 했다. 닭백숙은 어른 아이 뿐만 아니라 임산부, 노약자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겨 먹는다. 사시사철 국민보양식이기도 한 닭백숙의 산업적 가치와 약선음식으로서의 변신은 어디까지 왔을까?

◆청송 달기약수터는 '약수백숙'의 원조

아무 양념이나 향신료를 넣지 않고 그냥 닭고기를 통째로 약수에 삶아 낸 약수닭백숙. 끓는 물에 고기를 삶아 내는 조리방식은 전형적인 건강식 '징기스칸 요리'이다. 약수닭백숙의 유래는 청송 영천제(靈泉祭)가 그 시작이다. 매년 오월 단오날을 전후로 이곳 주민들은 약수터 물이 항상 넘치도록 솟아나게 해주는 지신(地神)에게 감사의 뜻으로 백숙(白熟)을 끓여 제상에 올리고 제사가 끝나면 제물을 나눠 음복하면서 약수닭백숙을 보양식으로 먹는 풍습을 낳았다고 한다.

청송 달기약수터는 조선 철종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화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이곳에 정착하다가 개울을 파는 수로공사 중 우연히 약수터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 한 작은 여관에서 머물다 간 이후 청송 달기약수 닭백숙은 한동안 만병통치약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다.

'꼬륵, 꼬꼬륵' 하는 약수물 솟아오르는 소리가 마치 암탉이 알낳기 전에 내는 울음소리와 닮았다 하여 약수터 이름이 처음 '닭이'로 불리다 '달기'가 됐다는 이야기는 그냥 듣기만 해도 귀가 번쩍 뜨인다. 닭백숙 전통음식의 프랜차이즈사업에 이용할 수 있는 재미나는 스토리텔링 소재로서 기가막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원탕은 원래 좁은 바위틈에서 약수가 겨우 새어 나와 가랑잎으로 받아 마셔야 하는 바람에 그 옛날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달기약수로 닭을 삶으면 육질이 참 부드러워져요. 닭비린내도 없어지지요. 닭을 잡아 복통에 쌀을 두세숫가락 넣고 푹 고아내면 그저 구수하고도 닭고기 특유의 감칠 맛은 어디 비할 데가 없어요. 어서 드셔 봐요." 올해로 이곳에서 장장 50년 동안 닭백숙을 고아 온 원탕 옆 예천식당 주인 김계자(68) 할머니는 상 앞에 앉기도 전에 달기약수 얘기를 꺼낸다. 열여덟에 시집 온 이후 내내 닭백숙만 해왔다고. 가게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은 비교적 좁지만 닭백숙 맛 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함께 내는 밥도 약수로 지어 찰기가 더하고 빛깔도 파르스름하다. 닭가슴살을 양념고추장과 마늘, 물엿에 버무려 석쇠에 구운 닭불고기는 먹음직스런 떡갈비를 닮았다. 김 할머니는 닭가슴살에다 닭발을 손질해서 같이 버무려 놓아야만 제맛이 난다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약선음식인 한방백숙, 음식 산업화 가치 높아

닭백숙 특유의 감칠 맛을 더해 주는 신기한 달기약수. 이 약수로 민물고기 매운탕도 끓이면 비린 냄새가 사라진다. 그냥 먹어도 괜찮은 닭백숙은 별 반찬이 필요없다. 담백한 무 장아찌와 백김치 한접시면 끝. 볶거나 기름을 두른 반찬보다 간장에 절인 깔끔한 장아찌류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한식세계화의 걸림돌인 너무 많은 반찬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 셈. 옻닭에서부터 인삼과 당귀, 천궁, 강황, 두충, 오가피, 하수오 등 청송지역 특산인 다양한 한약재를 넣고 토종닭을 고아내면 더할나위 없는 약선음식으로 변신한다. 손님 체질에 따라 맞춤형 한방백숙도 가능해 웬만한 한약방을 무색케 한다. 뿐만 아니다. 곰취, 미역취, 다래순, 산도라지, 참나물, 참죽 등 청송산 청정 산나물은 음식궁합이 딱 들어맞는 부식재료다. 청송은 달기약수에다 천혜의 주왕산 기슭에서 한약재와 산나물까지 한곳에서 음식재료를 다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더구나 조리과정까지 비교적 간단해 외식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전통음식 소재이다.

"한약재를 너무 많이 넣게 되면 닭고기의 감칠 맛이 죽게 됩니다. 좋다고 너무 많이 넣는 것은 도리어 해가 돼요." 김 할머니의 일을 돕고 있는 둘째딸 권귀남(35)씨는 약재는 적당하게 넣어야 닭백숙 고유의 맛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유불급이라고…. 한방에 대한 얕은 상식으로 한약재에만 욕심내지 말고 50년 전통의 어머니가 해주는 대로 믿고 실컷 먹기만 하란다. 달기약수 한방백숙은 어떤 한약재를 쓰느냐에 따라 빈혈과 산후조리, 위장병 등에 효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웰빙 바람이 일면서 대도시에서도 달기약수 한방백숙이 갈수록 인기다. 예천식당 한곳에서만도 청송∼대구간 버스와 청송∼서울간, 청송∼부산간 버스를 이용해 매일 30여곳에다 약수를 보낸다. 20ℓ들이 한통에 1만원. 새벽 5시쯤 보내면 대구 경우 오전 7, 8시면 도착해 멀리서도 그날 그날 약수를 받아 '달기백숙'을 해낸다. 달기백숙이라는 간판을 내건 집도 여럿이다. 토종닭이든 육계든 치킨용 닭이든 알싸한 달기약수에다 고아내기만 하면 모두 부드러운 약수백숙이 된다.

◆송이백숙에 찰떡궁합 반찬개발 한창

청송 달기약수 한방백숙은 산송이가 채취되는 가을철이 되면 송이백숙으로 변신한다. 닭고기와 송이는 찰떡궁합이다. 살이 길이로 길게 찢어지는 것은 닭고기나 송이나 같다. 모양도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 독특한 송이의 향에다 담백한 닭백숙의 부드러움은 미식가들도 극찬하는 이곳만의 별미이다. 올해는 송이값이 엄청나게 뛰었지만 송이백숙 맛을 못잊는 식도락가들의 성화에 송이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약수를 붓고 깨끗하게 씻은 닭을 넣고 가마솥에다 장작불을 지피지요. 한참을 끓이다가 닭이 다 익었을 즈음에 송이를 넣습니다. 너무 오래 끓이면 송이향이 다 달아나기 때문에 한소끔 끓인 뒤 불을 죽입니다." 김 할머니의 솜씨자랑은 끝도 없다. 곰취, 간장, 장아찌를 만드는 것도 예술이다. 곰취잎을 따다가 간장에 재워 하룻밤을 지낸 다음 간장을 따라내 다시 펄펄 달여서 식힌 뒤 다시 곰취잎에 부어 주는 것을 반복한다. 마치 간장게장 만들기와 흡사한 과정이다. 이후 설탕, 식초를 넣어 곰취잎에 새콤달콤한 맛을 연출한다. 푹 삶아 낸 닭다리를 뜯어 곰취 장아찌에 싸서 입에 넣는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풍미와 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 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 연구관 한귀정 박사는 달기한방백숙에 약간의 음식코디와 조리방법 표준화만 가미하면 전통 약선음식으로서의 산업화 가치가 아주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닭백숙과 어울리는 또 다른 나물은 참죽 부각이 있다. 장아찌로도 괜찮지만 부각을 만들어 튀겨내면 흙 냄새와 함께 바삭한 맛이 일품이어서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손님상에 낸다고 한다.

청송군도 나서 향토음식 개발을 위한 학술연구용역 등을 통해 전통적인 약수한방백숙 이외에도 신세대 입맛을 겨냥한 간장사과소스를 곁들인 닭가슴살테린, 사과와 인삼을 채운 닭가슴살과 한방데리야끼소스, 토종재래닭 콩나물찜, 파프리카 닭도리탕, 토종닭 궁중백숙 등 다양한 닭고기 요리를 개발해 두고 있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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