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뇌융합 산업+의료복합단지' 시너지 극대화

A씨 부부는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의 외국어고 진학에 목을 매고 있다. 무리해서 영어유치원에 보냈고, 학교에 들어가서는 외국인 개인교습까지 시키며 아들의 외고 입학에 올인했다. 하지만 아들의 영어 실력은 여전히 마뜩잖다. 실망한 A씨는 학창 시절 영어를 못한 부인을 닮아 그렇다며 화풀이하기 일쑤다. 부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창 시절 A씨 부부는 모두 외국어엔 '젬병'이었다. A씨는 "언어적 능력이 약했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들에게 괜한 기대를 한 것 같다"며 "어릴 적부터 인간의 뇌를 투영해 언어능력, 수리능력 중 어느 능력이 강한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B씨는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오다 당한 교통사고로 척수마비가 됐다. 의사는 "평생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했다. 평생 누워 지낼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는 결심까지 했던 B씨에게 요즘 희망이 송골송골 생겼다. 뇌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면 척수마비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소식 때문. 게다가 생각대로 움직이는 휠체어까지 개발돼 외출이 한결 편해졌다.

#C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 때문에 항상 걱정이다. 이럴 때마다 C씨는 '지우고 싶은 기억만 골라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C씨의 꿈 같은 생각은 현실이 될 전망이다. 뇌기능 제어 기술만 개발되면 영화에서나 봤던 인간의 뇌 속에서 선택된 기억만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자들이 급증, 사회 문제화하고 있는 우울증도 뇌기능 제어 기술로 완화할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A·B·C씨의 고민 해결은 정부가 올 연말 선정 예정인 한국뇌연구원의 몫이다. 뇌연구원이 수행해야할 핵심 과제들인 것. 뇌 연구는 21세기 인류가 극복해야 할 최후의 연구 영역으로 삶의 질 향상과 인간 능력 개발을 위한 핵심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뇌융합 산업의 기술 선점을 위한 두뇌산업 연구와 지원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뇌연구원은 어떤 곳

대구시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뇌융합 과학은 전세계적으로도 미개척 분야다. 우리 정부도 '뇌융합 원천기술 개발과 G7 수준의 뇌강국 진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에 한국뇌연구원을 유치할 경우 미래의 노다지 산업인 뇌융합 산업의 허브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한국뇌연구원은 2014년까지(1단계) 총 1천138억원이 투입되며, 2013년 초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원 초 50명의 연구원으로 시작해 2020년까지 200여명 수준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뇌연구원은 우선 고령화사회 진입과 현대 물질문명 심화에 따른 뇌 관련 질환 예방 및 치료 기술 개발을 맡게 된다. 치매·파킨슨병과 뇌혈관 질환 등 퇴행성 뇌질환이 고령화사회의 핵심으로 떠오를 전망이기 때문이다. 치매로 인한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비용이 연간 3조4천억~7조3천억원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뇌융합 산업에 대한 미래 수요는 엄청난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것. 또 뇌손상에 따른 장애 치료 기술의 필요성과 뇌발달 및 인지·신체 조절 기능 연구를 통한 인간 능력 향상 등의 핵심 과제도 뇌연구원이 맡을 전망이다. 장애인 재활치료 기술을 통한 복지 향상과 두뇌 계발을 통한 사교육 의존도 완화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기대비용은 연간 20조원으로 통계청은 분석하고 있다.

◆두뇌산업을 선점하자

두뇌산업이 융합형 핵심 산업으로 부상하는 만큼 대구가 두뇌산업의 중심지로, 또 연구 선점과 산업화를 위한 육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2011년 대학원 과정과 2012년 학부 과정을 잇달아 개설하는 DGIST는 뇌융합 과학 특화를 선언했다. 하지만 DGIST가 '동네 대학'으로의 전락을 막기 위해서는 한국뇌연구원 유치가 필수다.

전문가들은 서울대·가천의대와 손을 잡은 인천과 카이스트(KAIST)·대덕연구단지를 내세운 대전 등의 유치 경쟁자들에 비해 대구의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뇌융합을 특성화한 DGIST를 통해 뇌연구원을 가장 적절하게 서포터할 수 있다는 것이다. DGIST 문제일 교수는 "세계 주요 뇌연구원을 살펴보면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의 미니멈은 250명인데, 우리 정부안은 50명으로 출발해 2020년쯤 돼야 200여명으로 충원된다"며 "하지만 DGIST의 경우 뇌연구원이 개원할 때쯤 뇌융합 산업을 전공한 핵심 연구원 250여명가량을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연구 공백을 없앨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한 데다 의료 인프라와 IT산업이 집적한 지역의 경우 한국뇌연구원의 최적의 테스트 베드로, 연구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포스텍 김승환 교수는 "대구경북은 고령 인구 비율이 전국 평균을 상회, 뇌연구원이 수행할 노인성 뇌질환 해법 개발에 있어 최적의 테스트 베드인 데다 최고 수준의 의료 연구 인프라와 전국 최대 IT산업 집적지로 첨단의료 장비 개발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특히 뇌융합을 특화한 DGIST는 물론 대구경북의료단지와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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