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감백신 대란, 알고도 손놨다

대구시 보건소장 회의 안전대책 마련했지만 안지켜 비난 폭주

"허약한 노인들을 차가운 날씨 속에 3시간씩 줄을 세우는 것이 대구시의 보건행정입니까?"

19일 대구시 8개 구·군 보건소에서 벌어진 '독감백신 대란'(본지 19일자 1면 보도)은 예고된 결과였다는 지적이다. 신종플루 공포와 독감백신 부족으로 접종자가 대거 몰릴 것이 예상됐지만 시와 구·군청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 시민들의 비난을 자초했다.

대구시는 15일 구·군 보건소장 회의를 갖고 ▷동별 접종일자 지정 ▷번호표 배부 ▷신체 허약 노인 우선접종 ▷보호대기 공간 확보 등 독감접종 안전대책을 마련했지만 접종 첫날인 19일 이를 지킨 보건소는 거의 없었다.

접종장소에는 오전 5시부터 접종자가 몰려들면서 차례를 기다리다 길바닥에 주저앉는 노인들이 속출했다. 보건소 측은 뒤늦게 접종자가 몰리자 번호표를 나눠줬지만 이미 노인들은 대부분 2, 3시간씩 기다린 뒤였다. 번호표를 받았지만 대기자들이 많아 다시 2, 3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모(71·여·동구 신암동)씨는 "번호표를 들고 접종하는 곳으로 가보니 뒤에 기다리는 노인들이 새치기를 한다며 욕을 해대는 데다 직원도 뒤에서 줄을 서라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독감백신 접종자의 잇단 사망으로 질병관리본부는 몸에 이상이 있으면 접종을 연기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를 지키는 보건소는 드물었다. 보건소 직원들이 아픈 곳이 있는지 묻자 대부분의 노인들이 혹시나 접종받지 못할까 우려해 고개를 저은 것이다. 한 보건소 관계자는 "만성질환이 있는 노인들도 괜찮다고 하면 접종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접종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병·의원으로 접종 창구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의 경우 5년 전부터 병·의원에서 독감 백신을 실시해 접종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또 보건소가 동별로 접종 일정을 세분화해 접종 날짜와 시간을 지금보다 더 분산하거나, 학교 등 넓은 곳에서 접종해 사고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보건소 관계자는 "시설과 인력 문제 등으로 접종장소를 보건소나 보건분·지소 외에 다른 곳으로 하기는 힘들다"며 "동별로 분산 접종할 경우 뒷순서로 밀린 동 주민들이 백신품절을 우려해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혼란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대구시는 19일 하루 동안 대구지역 각 보건소에서 3만4천여명이 접종을 마쳤으며 복지관 등 사전 접종분을 포함할 경우 확보한 백신 9만1천300명분의 53%가량을 접종했다고 밝혔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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