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를 취재하다 보면 공무원들과 예산 문제를 화제로 삼는 경우가 적잖다. 지자체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예산을 많이 따낼 수 있느냐고 물으면 "사업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사업에 치중하기보다는 대형 프로젝트에 승부를 걸어라" "평소 예산 부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스킨십을 자주 해야 한다"는 등의 답을 내놓곤 했다.
듣기엔 다른 말 같지만 모두 '협상을 잘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부 예산은 고난도 협상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앙 부처·여야 정당·지자체가 전면에 나서고 이익단체·공공기관·사기업 등은 뒤에서 가세한 가운데 복잡하게 밀고 당기기를 한 결과인 것이다. 이익단체나 공공기관·사기업 등은 국회에 직원들을 파견시킴으로써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100명을 웃돈다고 한다.
올해 예산 심의도 11월 12일부터지만 예산을 둘러싼 힘 겨루기는 지난 1월부터, 수년씩 걸리는 대형 사업의 예산이라면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을 수 있다.
국회에 예산편성안을 제출해 놓은 정부라고 할 일을 다한 게 아니다. 국회 상임위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삭감론을 펴는 정당이나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전을 벌이는 한편 이들이 공들이는 사업의 예산을 증액시키거나 끼워넣는 식의 타협도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 예산안 편성 때부터 몇몇 사업의 예산을 부풀리는 등으로 '여윳돈'을 숨겨 놓을 수도 있다.
각 부처도 재정부의 부처 예산 심사 때 삭감됐던 예산, 혹은 국회 제출 시한을 못 맞춰 반영시키지 못했던 예산을 국회에서 살리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끝난 만큼 의원들을 내세워 문제 예산을 반영시키는 이른바 '청부(請負) 예산'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예산이 해당 의원에게 별다른 실리를 주지 못한다면 선거구와 관련된 예산 등을 반대급부로 챙겨주는 협상이 전제되기 십상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 관계가 맞물린 이익단체 등의 목소리까지 거세지게 되면 예산 협상은 더욱 복잡하게 되고, 이들 단체의 요구도 일부 반영한 타협안이 모색될 수 있다.
지자체도 정부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협상 수단에서는 마찬가지가 돼야 할 것 같다. 특정 예산의 관철을 위해 다른 예산의 삭감을 감수해야 할 때가 있고 이를 위해 일부 사업의 예산을 부풀려 요구·반영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의 도움을 얻는 데는 부처에 비해 수월할 것 같다. 지자체가 지역구 의원들에게 특정 예산을 떠맡기는 식의 압력을 가한다고 한들 현지의 여론은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지자체 편을 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협상력은 각 부처의 예산 심사에서부터 중요하다. 국장 등 고위 공무원들을 만나 부탁하는 것보다는 실무자를 찾아가 집요하게 설득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예산을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실무자들이고 이들의 손에 특정 예산의 사활이 갈린 경우도 적잖다.
대구시와 경북도의 협상력은 어느 정도일까? 중앙 부처로 가서 연고에 기대 몇몇 공무원들에게 부탁하고는 지역에 와서 국회의원들에게 예산을 떠맡기는 식은 이제 탈피했을 것이지만, "협상력을 더욱 키우는 게 시급하다"는 게 과천 관가의 지역 출신 공무원들 지적이다. 협상력에서 앞서가는 지자체만이 예산 정국의 승자가 될 수 있다.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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