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이성과 감정(정서)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고 배워왔다.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도록 권장받아 왔으며, 그런 통제력을 지닌 사람들을 냉철하고 이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뇌의 생리기제와 기능을 연구하는 신경심리학은 이러한 우리의 상식과는 상반되는 결과들을 보고하고 있다. 뇌에 생긴 종양으로 인해 이마 주변 뇌의 일부를 제거한 환자가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며, 단지 둔감해진 정서 반응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수술 전과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퇴원 후 그의 삶은 재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누군가가 깨워야만 일어났으며 직장에 갈 것을 강요당해야만 출근하였다. 업무 수행 중 다른 업무로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처음 업무에만 집착하였다. 그 결과 직장을 잃었고, 가정생활에서도 파국을 맞았다. 그 후 개인 사업, 재혼 모두에 실패하였고, 궁극적으로 집안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이 환자의 이러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순간에 적절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선택의 연속이다. 점심시간을 예로 들어 보자.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국물이 생각날 때다. '뜨끈한 칼국수가 좋을까, 아니면 돼지국밥, 따로국밥, 아니 동태탕은?' 즐거운 고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다 가버린다. 사실 아침 출근 때 옷의 선택에서부터 사소한 운전 중 브레이크를 밟을 순간을 결정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지속적인 선택을 요구한다. 이러한 선택은 항상 그 선택에 대한 결과, 즉 잘 되었을 때 만족감과 즐거움이, 잘못되었을 때 불쾌감, 후회 등의 감정을 수반한다. 이러한 정서적 경험은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느낌을 유발하고, 그러한 느낌이 우리의 의사결정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해 정서는 의사결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즉 이 환자는 뇌수술로 인해 감정과 정서처리 능력을 박탈당해 버렸으며, 정서처리 능력의 상실과 함께 의사결정 능력도 동시에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아무리 합리적인 사고라 할지라도 감정이 수반되었을 경우에만 적절한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사실, 즉 감정이 결여된 이성은 불완전한 이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남균(계명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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