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날씨가 좋아서 꽁치젓갈 맛이 기가 막힙니다. 맛 한번 보세요. 군내가 하나도 없고… 그저 입에 쩍쩍 달라붙네요."
경북 유일의 젓갈마을인 울진군 기성면 봉산2리 갈매마을. 곰삭은 꽁치젓갈의 구수한 냄새가 마을에 가득하다. 꽁치젓갈이 맛들면 이곳 주민들의 얼굴에도 맛이 스며든다. 이 마을 터줏대감격인 김춘자(58·봉산2리 109)씨는 요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난봄에 담근 꽁치젓갈 맛이 맘에 쏙 들기 때문이다. 밀봉해 둔 젓갈 통을 개봉할 때마다 "그래. 이 맛이야. 달다 달아"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최근 김장철이 시작되면서 봉산 꽁치젓갈이 불티난다. 핵산이 많아 김치의 풍미를 높이는 데는 꽁치젓갈이 그저 그만이기에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전국에서 택배주문도 쇄도하고 있다. 새우젓이나 멸치젓갈, 조개젓 등 작은 생선이나 어패류로 담근 젓갈만 흔히 봐 온 사람들은 무슨 꽁치로 젓갈을 다 담그느냐고 할지 몰라도 이 마을 꽁치젓갈은 조선시대부터 시작됐을 정도로 오래된 전통향토식품이다. '수운잡방' 등 옛 조리서에도 부추와 파무침 등 채소 겉절이와 쌈장 등 반찬의 풍미를 높여 주는 천연 조미료로 소개돼 있는 경북 유일의 봉산 꽁치젓갈. 그 깊은맛은 어디서 어떻게 나올까. 젓갈이 되고, 과메기가 돼 사시사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꽁치의 변신은 어디까지인가.
◆경북 유일의 젓갈마을 울진 봉산2리
울진 기성면의 해변마을인 봉산2리는 해변도로를 따라 모두 60여호가 옹기종기 살고 있다. 좌우에 후포해수욕장과 구산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피서철이면 민박동네이기도 한 이곳 주민들은 내륙지역 사람들이 된장 담그듯 꽁치젓갈 한두동이쯤은 다들 담그고 산다. 동해안 바닷물이 담장까지 넘실대는 이 마을은 매년 김장철이 시작되는 이맘때가 되면 꽁치젓갈 통을 조심스레 열기 시작한다. 지난봄에 꽁치와 소금을 켜켜이 쌓고 밀봉시킨 뒤 5, 6개월간 정성을 들여 숙성시켜 온 꽁치젓갈이 드디어 품평을 받는 순간이다. 젓갈이 제대로 맛든 집은 환호성이 터져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평가는 스스로가 하지만 집집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누구집 젓갈이 제대로 됐다더라'라는 소문이 금방 동네에 쫙 퍼진다. 그야말로 '뚜껑을 열어 봐야' 맛을 아는 봉산 꽁치젓갈. 그래서 집집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고 뚜껑 개봉 날도 '좋은 날'을 잡는다. 이처럼 정성을 다해 숙성시킨 봉산 꽁치젓갈은 멸치젓과 새우젓 등 여느 젓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진한 풍미를 낸다. 그야말로 숟가락이 혓바닥에 쩍쩍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쌈장으로 인기있는 갈치속젓 맛인가. 이게 황석어젓 맛인가. 봉산 꽁치젓갈을 먹어 본 미식가들은 연방 엄지손가락을 펴보인다.
"봄꽁치는 잡아 젓갈 담그고, 가을꽁치는 구이용으로 시장에다 내다 팔고… 겨울꽁치는 과메기 만들고… 다 살아가자면 머리를 써야지요. 허허허."
지난봄 450맛두리(1맛두리는 약 50㎏)를 담근 김춘자씨의 남편 권봉출(65)씨의 이야기는 봉산2리 마을 주민들처럼 머리 쓰며(?) 사는 곳도 없단다. 매년 4, 5월이 되면 마을 앞바다에 꽁치 어장이 형성되는데 봄꽁치를 구워 놓으면 마른 막대기처럼 팍팍해 맛이 없단다. 기름기가 빠진 탓인데, 그래서 시장에서도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고 한다. 꽁치는 많이 잡히는데 품삯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값이 싸고… 이 고민을 해결한 것이 바로 젓갈이라는 것이다. 요즘 잡혀 과메기로 변신하는 가을꽁치처럼 기름기가 많은 꽁치로 젓갈을 담그면 기름이 변패되면서 '짠내'가 나 젓갈 맛을 버리게 된다고. 그래서 젓갈 재료로는 봄꽁치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겨우 내내 기름기가 쏙 빠져 자연 다이어트가 돼 젓갈용으로 변신한 봄꽁치. 이게 바로 봉산젓갈이 전국에 유명해지게 된 배경이다.
◆봉산 꽁치젓갈의 맛 비결은 동해산 봄꽁치
봉산꽁치 젓갈의 감칠맛 비결은 어디 있을까. 지난봄 김춘자씨와 남편 권씨는 후포수협 어판장을 통해 봄꽁치를 구했다. 4, 5월 봄철 두달 동안 가늘가늘한 봄꽁치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통째로 씻어서 물기를 거둔 다음 천일염을 뿌려가며 숙성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500㎏들이 젓갈통에 가득 담기면 한아름 되는 호박돌로 꽁치를 짓눌러 놓고 젓갈용 비닐봉지로 밀봉시킨다. 그 다음 햇볕이 들어가지 않는 어둑어둑한 굴속에서 5, 6개월간의 긴 숙성과정을 거친다. 여기까지는 김씨의 남편 몫.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과정이다. 젓갈 맛을 어떻게 잘 내느냐는 것은 김씨 몫이다. 꽁치를 절이는 데 분명히 천일염만 쓴다. 특히 간수를 빼지 않은 소금은 쓴맛을 내 젓갈용으로는 절대금물. 그래서 김씨는 1년간 간수를 빼 고슬고슬한 천일염만 고집한다. 또 염도를 낮춰 간이 삼삼한 생젓갈을 내는 것도 김씨만의 비법이다. 뒷맛이 단맛을 내는 생젓갈은 너무 짜면 잘 삭지 않고 너무 싱거우면 맛이 넘어가 군맛이 나기 때문에 적절하게 간을 맞춰 꽁치 특유의 진맛을 우려내는 게 기술이다. 오랜 경험으로만 가능한 꽁치젓갈 맛내기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발효가 너무 많이 되면 꽁치살이 다 녹아 물이 돼 버려서 상품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수시로 숙성고를 드나들며 제 온도를 맞춰주고 가장 적절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등 반년 동안이나 공을 더 들여야 한다.
"특별한 비법이랄 게 뭐 있나요.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그 이전 할머니 때부터 내리 해오던 방법을 그대로 하고 있지요."
정성스레 꽁치젓갈을 다듬던 김씨는 "젓갈 담그기 좋은 꽁치가 많이 나기 때문"이라며 맛 비결을 그저 동해바다로 돌렸다. 젓갈이 어디서도 다 된다면 땅 넓은 내륙에 공장이 들어서지 왜 바닷가에서만 할 수 있느냐며 되묻기도 한 김씨는 무턱대고 짜게 담근 젓갈은 깊은맛이 우러나지 않아 손님들에게 건네주지 못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고추하고도 바꾸고 콩하고도 바꾸고… 꽁치젓갈을 이고 내륙 산골마을로 나가면 돈 대신으로 쓰였지요."
김씨는 지금은 인터넷이다, 택배다 해서 앉아서 팔 수 있지만 이전에는 좀처럼 생선이나 젓갈을 구경하기 힘든 산골마을로 봉산 꽁치젓갈을 팔러 다녔다고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 들어서는 꽁치 외에도 메가리(전갱이), 멸치젓갈도 담근다. 이전에는 오징어 젓갈을 담그기도 했는데 찾는 사람이 없어 그만뒀단다. 올해부터는 고등어 젓갈도 담그기 시작했다. 지난달 안동대 해양바이오 RIS사업단과 ㈜안동간고등어에서 찾아와 간고등어 젓갈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단 20맛두리(1t)정도의 시험생산에 들어간 고등어 젓갈이 성공할 경우 포장재 선정과 디자인 개발을 거쳐 상품화한 뒤 빠르면 내년 봄부터 기존 안동간고등어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통해 전국으로 팔려나가게 된다. 이 마을 생활개선회에서도 공장을 차려놓고 봉산 꽁치젓갈을 내고 있기도 하다. 꽁치젓갈은 2㎏들이 한통에 1만원이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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