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종시 특혜로 지방이 반발하자 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27일 이인중 대구상의 회장 등 지역 상공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종시의 기업, 연구소 등 자족시설 유치에 따른 지방의 역차별은 없다"며 "세종시의 인센티브는 혁신도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등 다른 성장거점도시 및 지역과 형평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호남 지역민들은 "정부가 지방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지방이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왜 반발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여전히 모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지 말라
정 총리는 이날 상공인들과의 만남에서 "세종시에 주는 혜택은 다른 지방과 똑같은 수준에서 제공할 방침이어서 역차별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세종시 특혜 때문에 지방이 반발하자 한발짝 물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지방의 반발 이유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세종시는 국무총리실이 진두지휘하는 가운데 대여섯개의 부처(部處) 장관들이 너도나도 경쟁에 질세라 세종시에 대기업과 외국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반면 다른 지방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 유치전에서 처음부터 공정한 게임이 될 수가 없다.
대구시 관계자는 "세종시는 총리는 물론 각 부처 장관들이 충성 경쟁하듯 대기업과 대학에 이전을 종용하고 외국 기업 및 병원, 연구소를 상대로 해외에서 유치 설명회를 열고 있다"며 "다른 지방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는데 경쟁 상대가 되겠느냐?"고 했다. 어느 기업이 정부를 등에 업은 곳을 마다하고 지자체 혼자 뛰는 곳에 오겠느냐는 얘기다.
지역 정치권 한 인사는 "정부가 충청 민심을 생각하고 적극 개입하는 모양새인데 나머지 지방의 민심은 왜 머릿속에서 지우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세종시에 많은 선물을 안기기 위해 개입하는 것을 즉시 중단해야 지방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인센티브 더 줘야
세종시 실무 기획단은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세종시가 유치하는 자족 기능은 ▷수도권으로부터 이전되는 기능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던 새로운 기능 ▷외국으로부터 유치되는 기능 등으로 한정한다며 세종시 때문에 지방의 역차별은 없다고 밝혔다. 지역민들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구상의는 지난해 수도권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방 이전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70% 이상의 기업들이 충청권과 강원권 일부 지역을 선택했다고 했다. 대부분 기업이 이들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출퇴근 1시간 이내 거리로 수도권과의 접근성을 꼽았다. 이인중 대구상의 회장은 "기업들의 시각에서는 이미 충청권과 강원권 일부 지역은 수도권으로 보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인 영호남으로 나누어진 구도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정부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경북도 한 관계자는 "세종시가 수도권 이전 기능과 새로운 기능, 외국 유치 기능으로 유치 대상 범위를 한정했다고 하는데, 영호남에 있는 일부 기업만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을 독식하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기업들의 눈에 수도권으로 보이는 충청권과 비수도권인 영호남이 처음부터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며 "정부가 진정 국토 균형발전 의지가 있다면 16년째 지역내총생산(GRDP) 꼴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는 대구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서 대기업을 보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광역권별로 분산시켜 유치토록 정부가 '교통 정리'를 하는 것이 균형발전에 더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는 왜 선정했나?
정부는 세종시에 국내외 의료기관과 연구소 등을 유치하기 위해 전방위로 뛰고 있다. 보스턴 의대 등 세계 유수 의대와 병원들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 투자설명회까지 여는 등 활발한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유명 의료기업의 세종시 유치를 확정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또 고려대가 바이오메디컬 단지(약 132만㎡)를, KAIST가 바이오 및 메디컬, 에너지 등 신개척 분야 연구와 벤처 육성 단지(165만㎡) 조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는 '빈 껍데기'가 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이상길 대구시 첨단의료복합단지추진단장은 "정부가 신성장 동력산업인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 대구와 오송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지정했는데 비슷한 역할을 세종시에 맡기기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 혜택까지 더 얹어주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범일 대구시장도 "대구의료단지와 기능이 중첩되는 문제만큼은 절대 용납할 없다"고 반발했다.
◆교육국제화특구 조성도 요원하다
대구경북은 의료와 함께 교육 분야에서 전통과 강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먹을거리로 교육국제화특구 조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세종시 교육특구 정책이 갑자기 수면 위로 치솟으면서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미 서울대·고려대·KAIST 등의 대학이 세종시에 2캠퍼스 설치를 고려하고 있는 눈치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은 "세종시에 대학과 연구소 등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지방, 특히 대구경북과는 공존하지 않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며 "정부가 국책 사업을 추진할 때는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대다수 지역의 불이익을 담보로 한 곳에 몰아주는 방식의 정책은 문제가 많다"고 비난했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은 "세종시에 기업, 대학, 의료기관, 연구소 등이 모두 쏠리면 대구가 미래의 희망으로 삼고 있는 혁신도시, 교육특구, 의료단지 등은 모두 차질을 빚을 것이 뻔해 대구경북의 미래를 망치게 된다"고 말했다.
◆광역경제권 선도산업 활성화해야
정부가 세종시 문제에 온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안인 5+2 광역경제권 선도산업을 특화·육성해야 국토 균형발전에 근접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DGFEZ) 청장은 "이전투구 논리에서 벗어나 광역경제권별로 선정해놓은 선도산업을 특화해 육성하는 방안을 정부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세종시에 기업, 과학, 교육, 의료, 연구 등의 모든 분야를 몰아준다는 것은 광역경제권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대구경북의 그린에너지와 IT융복합 산업 등 각 광역경제권별로 특화된 선도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그 분야 대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정부의 혜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광길 대경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 사무총장은 "지역 발전 정책으로 내놓은 대통령 공약인 '5+2 광역경제권 전략'을 어떻게 하면 서로 중첩되지 않게 특화할지 전략을 구상해야 할 시기"라며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행복도시 세종시' 정책이 나온 만큼 광역경제권 특화 전략에 맞춰 세종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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