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님을 위한 행진곡

1980년대 이후 문화운동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 잡은 민중가요 가운데 대중화된 것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이 노래는 단조이면서 매우 힘있고 선동적이다. 가사는 비장하고 멜로디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케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이후 "빠른 격정미와 느린 유장미를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의 단조 행진곡풍 민중가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때 동남아 시위 현장에서도 불려질 만큼 보편적 호소력도 갖췄다.

이 노래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지도자 윤상원과 1979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다룬 노래극 '빛의 결혼식'의 한 부분이다. 1979년 MBC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이란 노래로 은상을 타기도 했던 전 소니BMG 대표 김종률 씨가 그 영혼결혼식을 보고 모티브를 얻어 작곡했고, 여기에 소설가 황석영 씨가 민중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가사를 붙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님을 위한 행진곡'은 '빛의 결혼식'의 다른 노래와 함께 당시 광주 운암동에 있던 황석영 씨의 집에서 카세트 리코더로 녹음됐다. 그래서 카세트 테이프 원본에는 개 짖는 소리나 새소리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이처럼 원시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파급력은 엄청났다. 그러나 정작 김 씨는 이 작업 2, 3개월 뒤 바로 입대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몰랐다. 그는 입대 1년 후 휴가를 나왔다가 연세대 앞에서 데모대가 부르는 자기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국가보훈처가 내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기념식장에서 부를 '5월의 노래'(가칭)를 공모하기로 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5'18 기념행사에서 추모곡으로 사용되어 왔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시대상에 맞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노래로 대체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5'18 관련 단체들은 '조건부 수용'과 '수용 불가'로 갈리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전적으로 5'18 당사자들의 몫이다. 다만 이 노래가 그려내는 핏빛 풍경과 사무친 원한이 지금 사람들의 가슴에 얼마나 와닿을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기억을 80년대에만 묶어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정경훈 논설위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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