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현대미술관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찾기 힘들다는 지적은 서울 사람들의 기준에서만은 아니다. 미술을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듯 호사한 일로만 생각하면 그곳이 산속이든 시내 한복판이든 일상에서는 멀게 느껴진다. 미술관이 한적한 곳보다 시내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동시대 삶의 내용을 성찰하고 치열한 미적 담론을 생성시키는 현장이어야 하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데서 진즉부터 나왔다. 근현대미술을 아우르고 있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근대미술관(MoMA)의 기능과 현대미술관(MoCA)의 기능을 분리해 이제 두 개의 미술관을 따로 운영하더라도 충분할만한 때가 되었다. 특히 가장 활력 있는 최근 문화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실험적인 작품전들을 기획함으로써 현재 우리 시대의 수준과 필요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는 그런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근대미술이 우리에게 지난 시대의 삶과 미학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면 현대미술은 지금의 안이한 미의식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맞닥뜨릴 수 있는 장소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기무사 옛터는 바로 경복궁과 이웃하며 삼청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어서 이 자리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확정된 데에는 의미가 크다. 건물의 재사용 여부와 미술관의 성격을 놓고 더 논의를 거치겠지만 이것이 진정 문화의 시대를 여는 '신호탄'인지 기대된다. 예술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며 그런 제목으로 이곳에서 여는 전시는 그래서 더 가볼 만하다. 본관 건물 1, 2, 3층에서 열리는 세 개의 주제에서는 미술관의 기존 소장품을 모티프로 해서 재해석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유명 원로 작가에서부터 중견 및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층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주제, 뮤지엄 앤 소사이어티(Museum & Society) 부문에 출품된 전수천의 작업은 한 방 가득 채운 수많은 통신케이블 다발과 장비들로 만든 설치 작업인데 거기서 발신되는 음향과 감청기록을 연상시키는 파일들을 비치해 권위주의시대 억압과 공포 정치를 상징하는 비밀 도청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실제로 이곳 건물들에서 나온 폐기물들을 이용한 예들은 별도의 도서관 건물이나 온실 등에서 펼쳐지는 '공간변형 프로젝트' 및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에 많았는데 주로 설치작업들과 영상작업들에서 매체의 특성을 활용해 이곳과 연관된 과거의 청산되고 극복되어야 할 권력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불러와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수도 한가운데서 그것도 국립현대미술관 주도로 열리는 전시인 만큼 우리 현대미술의 향방과 전시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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