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맑고, 산세 좋고, 무릉도원입니다. 세계적 명품인 안동포도 우리 동네를 조금만 벗어나면 토질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죠."
임주재(56)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고향인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를 한바탕 늘어지게 자랑했다. 하지만 이내 쓴소리로 바뀌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한다'는 것과 같을까. 너무도 애착을 갖고 있는 고향 발전을 고민하다 보면 문제점이 부각되는 모양이다.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면 어르신들이 학교를 묻습디다. 그래서 연세대 다닙니다라고 하면 학과를 다시 묻죠. 그런데 경영학과라고 다시 답하면 아무 말씀들이 없으셨어요. 법학과나 행정학과 다닌다라고 했더라면 어르신들이 한층 밝은 얼굴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을 텐데요."
임 사장은 자신의 고향 그리고 대구경북인의 뇌리에 자리 잡은 '사농공상' 사상을 지적했다. 이 같은 마인드가 변화에 맞춰 긴밀하게 움직이는데 장애물이 됐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구경북 사람들은 배타적 고집 때문에 정치·경제·문화의 변화에 긴밀하게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선비정신, 양반문화, 이런 것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전통을 보전하면서도 얼마든지 유연하게 변화무쌍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대구경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자연부락 300 가구로 이뤄진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중학교부터 대구로 유학 나온 덕택에 다소나마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곧고 성실한 안동양반 기질도 금융계에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이다.
임 사장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손이다. 조부 3형제가 모두 3·1운동 때 일본군의 총에 맞아 숨지거나 옥살이를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에 대한 막연한 배타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행 근무 시절 동경사무소 파견이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어요. 미국도, 중국도 무시 못할 경제력을 가진 일본을 우리는 무턱대고 싫어했던 겁니다. 아픈 과거 상처를 씻기 위해 일본을 이겨야 했는데 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감정적 행동에는 반드시 전략적 사고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로 있다가 주택금융공사 사장으로 부임한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취임 일성이 '서민 지원 강화'였다. 대구경북을 비롯해 전국 서민층을 위해 내놓은 것이 '아파트 중도금 100% 보증제'였다. 미분양 아파트 분양자들의 원활한 중도금 납부를 위해 시중은행 대출 때 주택금융공사가 전액 보증을 서는 제도이다.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임 사장의 노력으로 미분양이 완전 해소될 때까지 연장될 전망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서민들의 평생 금융 친구가 돼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법령과 제도에 얽매이지 말고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변화하는 공사가 돼야 합니다." 그가 늘 직원들을 독려하는 말이다.
계성중·고, 연세대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에 입사, 금융감독원을 거친 그는 지난해 7월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임명됐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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