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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이해의 힘 "장애는 없다"…배유조씨 희망찾기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배유조씨가 3일 대구 달서구 성서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배씨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배유조씨가 3일 대구 달서구 성서도서관 2층 열람실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배씨는 "사고 전에 몰랐던 삶의 소중함을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고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오른팔은 'ㄱ'자로 굳었다. 손 마디마디는 엿가락처럼 뒤틀렸다. 걸음을 떼려 해도 오른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얼굴에 15㎝가량 나 있는 굵은 흉터 자국. 교통사고 후유증은 십수년째 그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

3일 오전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도서관 3층 컴퓨터실. 교육 공무원을 하다 교통사고로 장애인(2급)이 된 배유조(64)씨가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마우스를 왼쪽으로 옮기고 한글창을 띄운 뒤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나만의 작가' 생활. 언제가 이룰 작가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왼 무릎에 꼬아 올려놨던 오른 다리를 왼손으로 잡고선 다시 바닥에 내려놓는다. 글쓰기가 막힐때면 도서관 2층으로 내려간다. 신문, 잡지, 산문집 등을 읽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오른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지만 조금만 걷다 보면 다리가 풀려 한결 나아."

사고는 1993년 7월 예고 없이 찾아왔다. 교육청 근무를 마치고 대구 중구 한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사고를 당했다. "하얀 불빛이 비치고 공중에 붕 떴다는 것밖에 기억 나지 않아." 머리부터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고 왼쪽 뇌신경을 크게 다쳤다. 6개월이나 사선을 넘나드는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담당 의사는 그가 오뚝이처럼 일어서자 '기적'이라고 했다. "주위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대단하다고 말했어. 2005년 공무원 정년을 다 채우고 명예롭게 퇴직했어." 사고를 당한 뒤 'ㄱ' 'ㄴ' 쓰는 것에서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했다.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꺼내 보인다. 종이에는 왼손으로 쓴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반듯하게 쓰인 글자가 빼곡하다. 장애 탓에 조금은 더디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이해와 긍정. 장애열차로 바꿔 탄 뒤 정한 삶의 항로다. "사고 때문에 비록 장애인은 됐지만 주어진 인생 여로는 멈추지 않아. 더 열심히 살라는 채찍이라 생각해." 하지만 장애란 벽은 채찍치고는 가혹했다. 말끔한 차림으로 잡화점에 들를 때면 "마수도 못했다"(첫 손님도 못 받았다)며 손님대접은커녕 쫓겨나기 일쑤였다. "장애인을 보는 차가운 사회 시선이 조금씩 나아지겠지."

비우는 삶도 착착 실천하고 있다.

달서구 이곡 분수공원에서 계명대까지 10㎞ 거리를 매일같이 왕복한다. 산책을 통해 몸을 비우고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마음을 비운다. 오전 7시 아침, 정오 점심, 오후 7시 저녁 등 하루 세끼를 정확한 시간에 먹을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모임이 많지만 술은 자제한다.

아이들에게도 "남보다 우수하게 자라는 것도 좋지만 보통 사람의 삶을 사는 것도 큰 미덕"이라고 가르친다. 이날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다. 산보를 나섰다 만난 이웃에게 "요즘 운동 많이 하시더니 걷는 모습이 아주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사고 전에는 몰랐어. 앞으로도 이해와 긍정으로 신나게 웃으며 살아 갈거야."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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