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시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하나하나의 동작이나 행동'이라는 뜻으로 쓴다. 뒤에 감시라는 낱말을 붙이면 좋지 않은 말이 된다. 원래는 '손을 한 번 들어올리고 발을 한 번 옮기는 일'이라는 의미로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 '약간의 수고로도 할 수 있는 일'을 뜻한다.

이를 처음 쓴 사람은 한유(韓愈)다. 후대에 당송 8대가 중 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문장가다. 요즘으로 치면 논술과 비슷한 산문에 능했지만 정작 시험은 잘 치르지 못한 모양이다. 당나라 과거는 두 차례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한유는 2차에서 몇 번 떨어졌다. 그러자 그는 당시 서생들이 미리 지은 시문(詩文)을 시험관에게 증정해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는 풍습에 따라 시험관에게 글을 보냈다. '큰 바다나 강 언저리에 괴물이 살고 있다. 물을 만나면 비바람을 불러 하늘까지 오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말라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힘 있는 당신이 궁한 처지의 나를 옮겨주는 것은 손이나 발을 잠깐 움직이는 것과 같이 쉬운 일'이라는 내용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사전에 자신을 알리는 부정행위로 아예 낙방 처리가 될 만한 사안이다. 내용에서는 엄청난 자기 PR을 하고 있다.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용(龍)이 될 인재인데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니 잘 챙겨달라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어제 개인에게 통보됐다. 문제가 쉬워 전체적으로 점수가 많이 올랐다. 수험생이 있는 많은 가정에서 웃음꽃이 피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면 시험을 망쳐 힘들어하는 수험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삶에서 겪을 수십 번의 어려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도 몇 년을 이 시험에 올인하다 보니 실망도 큰 것이다. 잘못하면 지옥과 같은 수험생 생활을 1년을 더 해야 한다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낙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천재라도 시험은 늘 어렵고 불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시험관이 천재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낼 수도 있어 시험은 불안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유 같은 대문장가도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해 잘 봐주십사 하는 글을 보낼 정도가 아닌가? 이번의 어려움을 한 번 더 뛸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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