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영범(가명·13)이는 한살 터울인 누나와 초등학교 2학년 사촌동생과 함께 산다. 엄마는 가사도우미와 청소 등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3개나 하며 홀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영범이는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방과 후 학교'가 없는 날에는 낮부터 TV 앞에 뒹굴기 일쑤였다.
그랬던 영범이가 이제는 갈 곳이 생겼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집과 가까운 대구 수성구 황금동 '하상공부방'에서 저녁도 먹고, 매일 1시간 30분씩 공부도 한다. 영범이는 "공부방에 오면 친구도 있고 부족했던 공부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14일 문을 연 '하상공부방'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 정하상성당에서 마련한 방과 후 공부방이다. 인근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대상. 이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초·중·고교생을 합쳐 300여명에 이른다. 아직 간판도 제대로 달지 못했지만 갈 곳을 찾은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상공부방'은 정부 지원 없이 성당 신자들의 힘으로만 운영된다. 신자들은 그동안 지역 복지사업을 위해 모아왔던 2천만원을 이곳에 쏟아부었다.
류승기 성 정하상성당 주임신부는 "정부 지원을 받는 복지시설로 등록하려면 까다로운 법적 규정이 너무 많았다"며 "정부 지원을 받을 경우 신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 걱정돼 신자들의 힘으로 운영키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없다 보니 신자들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공부방을 끌어가고 있다. 아이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선생님들도 모두 자원봉사자이고, 성당 소공동체 회원들이 매일 돌아가며 아이들의 식사와 운영 보조를 맡는다. 학습 선생님들은 교직을 은퇴했거나 학원가에서 경험을 쌓은 교사들로 구성해 전문성을 높였다.
이곳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과목을 가르친다. 매달 200만원씩 들어가는 운영비도 자체 후원회를 조직해 충당한다. 운영을 맡고 있는 김 다미아나(53·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배우자'는 게 공부방의 목표"라며 "저소득층 아이들은 공부에 열의가 있어도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돼 뒤처지는 경우가 상당수인데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류 주임신부는 "현재는 초교생과 중학생만 받고 있지만 앞으로 고교생까지 범위를 넓히고 아이들의 수도 2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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