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다양한 개성들의 어울림

이현열 작
이현열 작 '삶을 즐기는 자 기쁨을 얻으리'. 한지에 목탄 채색

하제창작스튜디오 그룹전 / ~2010. 1. 23./ 갤러리 분도

갤러리 분도는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하제마을에 위치한 창작스튜디오 작가 9명을 초대해 전시회를 연다. 그 중에는 이미 대구의 여러 기획전에 몇 차례 참여했던 작가들도 있어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실험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작가"들로 구성된 그들의 주제나 경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관심이 높다. 특히 하제창작스튜디오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서울 쪽의 작가들이 민주적으로 꾸려가는 민간 운영 장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더욱 주목받는 곳이기도 하다.

비디오 설치 미술가 김창겸도 이곳 작가인데, 포토샵 작업을 바탕으로 한 7분짜리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는 제목의 싱글채널 HD비디오 작품을 선보인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뒤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끼리 벌이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내용의 발상을 영상 이미지를 조작하는 능란한 편집기술을 통해 표현해 독특한 재미를 준다. 시대적 격동기의 영상들을 경쾌한 배경 음악과 결합시켜 유머러스하다기에는 진지하고, 전혀 심각하지 않은 척한 태도로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이 매력이던 예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최근엔 단순한 정물을 모티프로 한 영상 작업들로 변화를 보이는 듯하다. 그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사루비아 다방'(2003)이란 작품은 수십여곳의 다방을 찾아다니며 간판과 내부 모습을 찍고 그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 다방에 관한 한편의 영상 논문을 쓴 것이었다. 지난 시간들과 삶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서 어떤 의미를 판단하기 이전에 먼저 잊고 있었던 것과 다시 마주하게 돼, 미학적으로 아름답진 않지만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요소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전시참여 작가들의 개성도 다양하지만 장르도 고루 섞여 있다. 동양화를 전공한 이현열은 간결한 세필 묘사로 친숙한 자연 풍경을 정감 넘치게 그려내는데 산과 들, 강의 풍경을 주 소재로 다루면서 그 속에 익살스런 표현을 더해 흥미를 끈다. 동양화의 재료와 양식으로 그린 현대적인 산수화이면서 시속의 풍자화라고 할 만하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림을 읽는 재미가 마치 16세기 북유럽의 히에로니무스 보슈나 피터 브뢰겔의 작업에서 풍경과 함께 묘사된 군중의 모습을 볼 때를 연상시킨다. 점잖은 자연에 일상의 온갖 단편들이 녹아 들어가 있는데 사람과 동식물이 함께 어울려 벌이는 갖가지 행동들이 세태를 비추듯 명랑성과 유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하제스튜디오와 그곳 작가들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훌륭하게 갖춰져 있어서 개개의 작업세계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왕성한 창작열로 자신의 주제에 몰두하는 만큼 보여줄 게 많은 작가들이다.

미술 평론가(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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