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백안삼거리에서 동화사로 2km 정도 달리다 북지장사 가는 길로 우회전하면 집채만한 돌에서부터 남근석까지 각양각색의 돌들을 만날 수 있다. 팔공산 방짜유기박물관 바로 아래 수백, 수천 개의 돌이 쌓여있는 '돌 그리고'는 어느덧 대구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남근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할머니들은 큰 바위 앞에서 정성들여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이곳 '돌 그리고'의 대표 채희복(66)씨가 수집한 돌이 이제는 사람을 불러모으고 있다. 전직 대통령, 대기업 회장 등 유명인들이 돌을 구하러 이곳까지 오기도 한다.
채씨의 1만3천300여㎡(4천여 평) 땅에는 돌이 지천으로 널렸다. 채씨가 전국 각지에서 실어나른 트럭 780여대 분량의 돌들이다.
그의 돌 사랑이 시작된 것은 20여년 전. 우연히 나선 등산길에서 첫사랑 같은 돌을 발견했다. "돌을 보니까 눈에 환하게 뜨이더라고요. 일본에 반출될 거라는 걸 알고 야쿠자에 맞서기도 했어요. 2년여간 온갖 정성을 들인 끝에 영화 같은 과정을 연출하며 트럭 70여대 분을 들여왔죠. 환경단체들에게 공격도 많이 받았어요."
그 후로 돌을 수집하기 위한 채씨의 여정은 시작된다. 동네 어귀에서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하면 그 동네에 온갖 정성을 들인다. 마을 회관에 노래방 기계를 넣어준 곳만 해도 13곳. '이제 돌 갖고 가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충주호에서 잠수부가 일러준 돌을 캐내기 위해 돌 주변에 튜브를 달고 공기를 주입해 돌이 떠오르도록 한 후 대구까지 싣고 오기도 했다. 대단한 열정이자 집념이다.
지금 성주군 돌 38덩어리를 갖고 오려고 준비 중이다. 운임만 4억7천여만원. 마사토 속에 박혀 있던 초가지붕보다 큰 계란형 돌들이다. 세계적 미술가 이우환 선생의 돌 작품을 모셔오는 것도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온갖 비난 속에도 꿋꿋할 수 있는 건 '돌 박물관'을 짓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팔공산은 관광자원이 엄청나게 풍부해요. 갓바위를 비롯해 각종 음식점, 예술가들이 곳곳에 포진해있죠. 여기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돌들을 갖다놓으면 완벽한 관광지가 됩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거듭나는 거죠."
그의 돌 사랑은 '돌집'에서 절정을 이룬다. 거대한 자연석 사이에 난 공간을 이용한 돌집은 침상 하나, 작은 방 하나가 전부인 움집이지만 현재의 집을 짓기 전에 4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제법 따뜻하다고.
20여년간 살아온 팔공산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광주 무등산은 팔공산과 여러 모로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산인데도 예술가들이 모여 시와 그림, 음악이 살아있는 곳이에요. 조금만 지원해주면 팔공산은 파주 헤이리 못지않은 관광명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집을 개방하고 작가의 공예품을 판매하는 부스도 만들고. 약간의 관심만 있으면 되는데 너무 아쉬워요."
그는 자신의 집도 예술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6년 전 공들여 지었다. 그의 집 마당은 여느 전원주택과 다르다. 마당으로 난 창에는 자연 풍광 대신 회색 콘크리트 벽만 보인다. 뜻밖의 구조다. 이 집의 콘셉트는 '수인(囚人)의 집'. "집 속에 사는 사람 치고 죄인 아닌 사람이 있나요."
외부로부터 분리시키는 회색 콘크리트 담장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면 '비밀스런 사적 공간'이 된다. 이곳에선 작은 음악회, 시낭송회 등이 간간이 열린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경치를 유리창에 가득 담는 것보다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살짝 보이는 풍경이 더욱 멋있게 느껴진다.
집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빛을 들이는 집'이다. 시시각각 햇빛이나 달빛, 별빛이 충만하다. 건축가 이현재씨의 작품이다.
집 앞에는 한국 현대시 육필공원 '시인의 길'을 조성해두었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고은 '시인', 김용택 '부전나비', 정호승 '물새', 신경림 '갈대' 등 현대시 30여편을 컴퓨터 글씨가 아닌, 고뇌의 흔적이 묻어있는 시인의 육필로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지금 팔공산을 문화예술인촌으로 만드는 초석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팔공산에 깃든 가난한 예술가들이 날개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은 수천, 수만년이 지나도 아마 변함이 없을 겁니다. 팔공산에 이렇게 볼거리를 만들어두면 먼 훗날, 언젠가 한번은 고맙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요?"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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