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당 역사 잇는 조규안 문성서화사 대표

최고의 품질 선택…꼭 맞는 한지'붓 추천하죠

서예용품과 동양화재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문성서화사는 45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문성서화사의 전신은 문화당이다. 문화당은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필방으로 붓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러본 적이 있는 곳이다.

선비정신의 산실 문화당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주가 고향인 조규안(45'사진)씨다. 반세기 전 영남 사람이 세운 문화당의 전통을 호남 사람이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대구에 아무 연고도 없었던 조씨가 문화당을 인수한 계기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문화당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붓을 만드는 분이 문화당을 운영하다 자식에게 물려주었는데 장사가 잘 안됐습니다. 팔려고 내놓았는데 마땅한 인수자마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문화당에 전주 한지를 공급해 줬는데 옆에서 지켜보니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 문을 닫을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수를 한 뒤 이름을 문성서화사로 바꿨습니다."

조씨는 그길로 전주 생활을 청산하고 혈혈단신 대구로 왔다. 1980년대 대구는 전라도에 비해 한지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24년 동안 문성서화사를 운영하며 대구에 한지 문화를 보급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구 종로호텔 인근에 위치한 문성서화사 입구에는 어른 키만 한 붓 두개가 매달려 있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곳에서 한번쯤 본 듯한 풍경이다. 문성서화사는 얼마 전까지 중앙로에 있었다. 중앙로가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되면서 종로로 옮겨왔다. 문화당 시절부터 영업해 온 터전을 옮기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된 영업 장소도 중요한 무형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차량 통행이 금지되면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없게 됩니다. 차를 이용해 물건을 구매하는 손님들도 큰 불편을 겪게 되기 때문에 영업 타격을 감수하고 이전을 했습니다. 이전을 한 뒤 소매매출은 줄었지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영업을 강화해 보충하고 있습니다."

문성서화사가 종로 골목으로 이전한 데도 이유가 있다. 조씨는 당초 봉산동 문화의 거리로 이전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대구를 대표하는 유서 깊은 골목 종로의 이미지와 문화당 역사를 이어받은 문성서화사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종로에 새 터전을 잡았다.

전주한지직매장이라는 글귀가 붙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50여평 규모의 매장에 온갖 문방사우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문향(文香)이 물씬 풍기는 곳으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이 느껴진다.

한지를 비롯해 화선지, 붓, 먹, 벼루, 책, 전각, 동양화재료, 부채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지만 주력 상품은 한지와 붓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한지와 화선지는 조씨가 운영하는 전주 공장에서 일일이 손으로 떠서 만든 것들이다. 품질이 좋아 서예가, 한국화가, 한지공예가, 한지인테리어전문가 등이 많이 찾는다. 한번 찾으면 또 찾게 되는 까닭에 대부분 오랜 단골들이다.

문성서화사가 여러사람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품질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조씨는 물건을 팔때 꼼꼼히 따져서 판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예술가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비결이다. "한지는 용도에 맞는 것을 골라 써야 제구실을 합니다. 한지는 크게 그림용과 글씨용으로 나누어집니다. 번짐의 정도에 따라 또 세분화됩니다. 한지를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 번짐의 정도입니다. 흔히 처음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좋은 한지 달라고 합니다. 제가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손님의 취향 등을 꼬치꼬치 물은 뒤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한지를 추천해 줍니다."

붓을 팔 때도 마찬가지다. 조씨는 전국의 장인들로부터 구입한 붓을 직접 테스트한다. 붓의 성질을 파악해 손님들이 원하는 붓을 권해드리기 위해서다. 손님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는 조씨의 이런 상인 정신은 고객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문성서화사를 애용하는 단골은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에 걸쳐 있다. 쇄도하는 주문전화로 전화통은 늘 불이 난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판매하는 것은 선비정신입니다. 손님들과 저 사이에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대한 손님들의 요구에 맞춰주려고 노력합니다."

조씨는 대구지역 서예'동양화계의 산 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모전에 입선한 많은 청년작가가 국전초대작가가 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골 손님 중에는 내로라하는 서예가와 동양화가들이 수두룩하다. "고등학교 때 취미로 서예를 시작했다 유명 서예가가 된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과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자산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대구에 정착한 뒤 대구 여자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는 조씨는 대구 사람이 거의 다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은 대구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전주이지만 삶의 터전이 형성된 곳이 대구이고 앞으로도 대구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 그는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지역의 자랑거리로 문성서화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소중한 인연을 더 많이 만들고 간직해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는 필방으로 가꿔나가겠습니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기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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