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모현철 기자의 아이티는 지금] 죽음의 공포 걷힌 자리 삶의 절망이…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 목발과 약 등을 담은 50여개의 의료물품 상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동산병원과 한국기아대책 의료봉사단이 아이티로 가져가는 5천만원어치의 의료물품이다. 동산병원 직원들과 힘을 합쳐 대형버스에 짐을 싣고 이날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중량을 초과하는 짐이 많아 다시 짐을 싸야 했지만 공항에서 1인당 수하물을 2개에서 3개로 늘려준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미국 뉴욕 JFK공항을 거쳐 도미니카공화국 산타도밍고 공항에 도착했다. 워낙 짐이 많다보니 짐을 찾아 다시 부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의료물품 운반에 꽤 시간이 걸렸지만 공항 직원과 한국기아대책 직원들이 자신의 일처럼 도와줬다.

소형버스에 의료물품을 싣고 도미니카공화국을 통해 아이티로 가는 동안 지진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포장된 도로와 비포장 도로를 번갈아 달려 아이티와 국경을 맞댄 도미니카공화국의 서쪽 끝 도시 '히마니'에 도착했다. 2~3㎞를 더 가니 국경이었다. 아이티를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국경부근은 지진이 발생한 지 2주가 지나면서 평온한 모습이었다. 각종 구호물품 차량이 쉴새없이 나가고 들어갔다. 국경과 국경 사이 약 50m 길가에는 노점상들이 신발이나 음식, 옷가지 등을 팔고 있었다.

산타도밍고 공항을 출발한 지 9시간 만에 국경을 넘자 아이티가 중남미의 최빈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포장도로는커녕 오른쪽으로 커다란 호수를 끼고 달리는 도로 옆으로는 절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아슬아슬했다. 거듭되는 허리케인과 지진에 의해 무너진 산들은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국경지역에서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로 가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담했다. 지진의 피해가 거의 없는 곳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거나, 집 난간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벽돌을 얼기설기 쌓아 만든 집들은 지진이 아니더라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한 시간은 30일 오전 6시(현지시각 29일 오후 4시·시차 14시간). 대구를 출발한 지 40시간 만이다. 구호팀은 곧장 포르토프랭스 외곽에 있는 '이 파워'(E-POWER) 발전소 부지에 베이스캠프를 세웠다. 이 발전소는 한국 동서발전과 아이티 현지 투자자들의 공동투자로 만들고 있는 발전소이다. 구호팀은 이날 시간이 늦어 곧바로 진료에 나서지 못했다. 대신 포르토프랭스 인근을 버스로 둘러봤다.

포르토프랭스 시내는 수도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었다. 국경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봤던 시골 마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사람이 훨씬 많고 지진 피해가 확연했다. 거리는 온통 쓰레기더미였고, 내려앉은 건물 잔해 사이로 사람들이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먼지가 쌓인 건물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건물 잔해 부근에서 구정물로 손을 씻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지진의 공포는 어느 정도 사라진 듯했다. 포르토프랭스는 가까스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죽음의 공포보다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보였다. 의지를 북돋우려는 노력이 절실해 보였다.

데스킬린 산드라(27)씨는 "지진으로 가족은 다치지 않았지만 집과 직장 모든 것을 잃어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살고 있다"면서 "아이티가 하루빨리 재건돼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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