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즐거운 책읽기] 도가니/공지영/창비

장애인 시설에서 펼쳐지는 거짓·폭력 고발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읽었다. 이 소설은 안개가 자욱이 덮인 도시 무진을 배경으로 자애원이라는 이름의 장애인 시설에서 펼쳐지는 거짓과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는데, 기사의 마지막 구절은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다. 그 순간 작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2005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모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도가니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안개로 덮여있는 무진시는 거짓과 위선이 지배하는 이 세계의 축소판이자 상징적 도시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등장하는 무진을 떠올리게 하는 이 도시는 늘 짙은 안개로 덮여 있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중 화자인 강인호는 어린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인데, 사업실패 후 뚜렷한 직업 없이 몇 개월을 쉬다가 아내의 소개로 무진시 청각장애인학교의 기간제 교사로 가게 된다. 특수교사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이 장애인학교의 교사로 가는 것도 이상한데, 이 학교에는 학생들과 유일하게 소통하는 방법인 수화조차도 할 줄 아는 교사가 거의 없다. 게다가 강인호는 출근하는 첫날부터 이상한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아이 한 명이 그 전날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 아이의 죽음은 경찰서에서 자살로 처리되고 만다. 수업을 들어간 교실의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하고, 죽은 아이의 형에게 심한 구타의 흔적이 발견된다. 학생들은 청각장애에 지적 장애까지 복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들의 부모도 장애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딸린 자애원이라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학교에는 매년 40억 원의 막대한 정부예산이 지원되고 있지만, 왠지 모를 불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설립자의 쌍둥이 아들 둘이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고 있으며, 그들은 지역 교회의 장로이기도 하다. 그들의 주변에는 무진고, 무진여고 동기동창 혹은 교회 인맥으로 연결된 다양한 세력들이 포진하여 든든한 연줄과 배경이 되어준다. 주인공 강인호와 강인호의 대학 선배이며, 무진인권운동센터 간사로 일하는 서유진은 이 학교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폭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지고 범인들의 끔찍한 죄상이 폭로되지만, 결국 범인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그들을 변호한 변호사는 서울 강남의 변호사 사무실을 수임료로 약속받은, 갓 부장판사를 그만둔 변호사이다.

돈이 없어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박보현 교사만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을 뿐이다. 반면 양심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은 해고되고, 강인호는 모함을 받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저항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성폭행과 상습적인 폭행을 일삼던 이들은 태연히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피해자인 아이들과 애써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던 이들만 상처를 잔뜩 입고 남아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본다면 명백한 패배이고 절망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불의와 맞서 싸우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 이후 나는 평화의 한 끝자락을 잡은 듯했다. 쓰는 내내 이 실제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가해자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삶과 현실은 언제나 그 참담함에 있어서나 거룩함에 있어서나 우리의 그럴듯한 상상을 넘어선다.…'

싸움에서는 졌지만, 아이들과 그 싸움에 참여했던 어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희망을 얻게 된다. 사랑과 헌신은 흔히 그 가치가 폄하되지만,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희망의 빛이 된다.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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