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예술 공장 공장장 워홀

앤디 워홀(1928~1987)만큼 미국적인 예술가가 있을까. 팝 아트(Pop art)의 선구자로 상업적이고 저급한 작품을 양산해 미술의 가치 자체를 바꿔놓았다. 누구든 화가나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가 3만 점을 남겼다고 하지만 그의 작품은 추산조차 할 수 없다. 상업 미술가의 경력을 살려 실크 스크린(판화 기법)으로 마구 찍어냈다. 작업실은 아틀리에가 아니라 월급 화가를 고용한 공장(factory)이었다. 그래서 지역의 호텔·골프장에서도 '마릴린 먼로' '코카콜라' 같은 작품을 볼 수 있는지 모른다.

삶 자체가 한편의 쇼를 방불케 한다. 집에 4대의 TV를 켜놓고 여자는 멀리한 채 녹음기와 사진기만 끼고 살았다. 매일 밤 물(?) 좋은 파티를 열고는 주위만 맴돌았다. 어릴 때 앓은 신경쇠약의 후유증이었다. 최후도 어처구니없다. 1968년 한 여성에게 총을 맞은 후 고생하다가 1987년 오늘, 담낭수술 중 의사의 실수로 죽었다. 사람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물론 칙칙하고 퇴폐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는 그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나는 얄팍한 인간이다."

박병선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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