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시발점이자 대륙의 관문 부산! 부산역을 출발한 '노조미'호 열차는 대구를 지나 경성을 거쳐 평양을 뒤로하고 압록강을 넘어 만주국의 봉천(심양)에 도착한다. 부산역에서 표를 끊어 봉천을 경유하여 산해관(山海關) 안쪽 북경으로 가거나, 만주국 수도 신경(장춘)으로까지 열차를 바꿔 타지 않고 곧장 갈 수 있다. 봉천에서 특급열차 '아세아' 호로 갈아타면 신경을 지나 러시아풍의 이국적인 국경 도시 하얼빈에 닿는다. 낮 12시 정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성역사 지붕 위의 스피커는 "호오뗑…호오뗑" 안내 방송으로 봉천행 열차의 출발을 재촉한다. 시인 김광균이 '추일서정'에서 읊은 경성을 떠나 들을 달리는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는 개성을 지나 사리원쯤 달리고 있을까.
소설가 이태준은 1938년 이 열차를 타고 만주의 조선인 농민 부락을 답사한 기행문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비록 나라 잃은 백성이지만 활동 무대는 당시로서는 가히 세계적이었다. 민족독립의 단심을 품은 수많은 의혈지사가 압록강 철교를 지났고, 농업 이민을 떠난 사람들, 유랑극단의 떠돌이, 한탕주의자 모두가 만주, 중국 대륙, 노령 시베리아, 일본 등지를 생활 근거지로 또는 활동 무대로 삼았다. 물론 나라 뺏긴 백성의 뿌리 없는 삶이 하루라도 편할 리 있겠냐마는 이 좁은 땅덩이를 벗어나 잠시나마 대륙적 기질을 만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발해의 꿈'은 정녕 사라지고 말았는가? 5천만 한국인은 65년 동안 '섬 아닌 섬'에 갇혀 살고 있고, 2천200만 북녘 동포는 백 년 동안이나 버려진 채 인간다운 삶 자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차로 기차로 서너 시간이면 더 갈 곳이 없는 이 좁은 땅덩이에서 동서로 쪼개져 파당을 짓고 패거리 싸움에서 좀체 헤어날 줄 모른다. 지역 차별이니, 역차별이니 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앞날보다 지역주의를 먼저 내세운다. '한 민족, 두 국가' 상태에다 '한 국가, 두 국민' 상태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민족 분단의 현실 위에 지역 갈등에다 이념 갈등까지 뒤엉킨 국민 분열이 우리의 초상화라는 말이다. 이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심성의 발로인 지역주의는 우리 민족이 호쾌한 대륙적 기질을 잃고 '분단의 섬'에 유폐된 채 살아오면서 정상적인 심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통일을 서두를 필요는 없으나, 이제는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대륙의 꿈을 회복하고 분단 극복으로 정치생태학적 환경을 바꾸는 데서 민족적 삶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통일은 오랫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닫힌 마음' 상태에 젖어 있는 민족적 심성이 대륙적 기질을 회복하는 장쾌한 과업이다.
통일은 한국 경제의 활로를 여는 길이다. 한국 경제는 좁은 국토와 작은 시장으로 경제성장의 한계를 더 이상 극복하기 힘들다. 현재 세계 13, 14위 경제규모로 G20 회원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나 한반도 경제권이 통합된다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통일 코리아의 7천500만 인구와 더불어 북방지역으로 확대된 시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 확충으로 한국인의 창의성과 모험심을 자극하여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통일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나, 통일을 한없이 미루거나 회피할 수는 없다. 통일은 북한 동포의 생존권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되찾는 길이다. 만성적인 빈곤과 기아, 그리고 폭압적 기만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동포의 비인간적인 존재 양태는 하루빨리 타파되어야 한다. 한민족은 통일로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되찾고, 대륙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웅혼한 기상을 회복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 나눔과 공유의 철학이 필요하다. 남북 간, 계층 간 차별이 철폐되고 차이를 줄여야 한다.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영역이 많을수록 통일은 보다 빨리 오고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민족의 미래와 참된 통일을 위해 우리 모두의 희생과 양보의 미덕이 절실하다.
낙동강을 끼고 북상하면서 한강을 지나고 대동강을 넘어 압록강 철교를 지날 때, '과거' 우리가 살아왔던 분단시대를 어떻게 돌아보게 될까. '소극적(笑劇的) 비극'의 시대였던 분단시대를 말이다. 아! 대동강. 유난히 버드나무가 많은 대동강을 품었다고 해서 평양의 별칭이 유경(柳京)인데… 지금쯤 대동강 물은 풀렸을까?
조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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