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바람이 눈을 모아

바람이 눈을 모아

안 민 영

바람이 눈을 모아 산창(山窓)에 부딪치니

찬 기운 새어 들어 잠든 매화를 침노한다

아무리 얼우려한들 봄 뜻이야 앗을소냐.

안민영(安珉英·1816~? )의 연시조 '매화사'(梅花詞) 또는 '영매가'(詠梅歌)로 불리는 노래 8수 중 여섯 번째 작품이다. "찬바람이 눈을 모아다가 산장 창문에 부딪치니/ 찬 기운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매화를 침범한다/ 그러나 겨울이 제 아무리 매화를 얼게 하려 한들 봄의 뜻이야 빼앗아 갈 수 있겠느냐"로 풀리는 시조다.

안민영의 호는 주옹(周翁), 운애(雲崖)로 박효관(朴孝寬)의 문하에서 시조를 배웠으며 조선조 3대 가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가곡원류』(歌曲源流)를 스승과 함께 엮었다. 또한 시조문학 사상 최초의 개인 시조집인 『금옥총부』(金玉叢部)의 저자이기도 하다. 『금옥총부』에는 180수의 시조가 실려 있고, 주옹이 70세 되던 해인 1885년에 이뤄진 것으로 『가곡원류』보다 9년이나 늦게 만들어졌다.

'매화사'는 안민영의 대표작으로 헌종 6년 어느 겨울에 스승 박효관의 산방에서 벗과 더불어 거문고 타고 노래 부르며 놀 때, 스승 박효관이 가꾼 매화가 방안에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매화사 8절'을 지었다는 창작 배경이 『금옥총부』의 해설문에 전한다. 밖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방안에 매화가 피어 있다면 그것을 본 가객이 어찌 노래를 읊지 않을 수 있으랴. 조선 가객들의 풍류를 짐작게 하는 작품이다.

초장에서 바람도 그냥 겨울바람이 아니라 눈을 모아 부는 바람이라 하여 차가움을 강조하고, 중장에서 '봄 뜻'이란 말을 가져와 초장의 '눈'이란 낱말과 대비시켰다. 그래서 바람은 더욱 차갑고, 봄은 더욱 봄다운 말맛을 느끼게 해 준다. '봄뜻'은 '봄이 하려고 하는 뜻'이다. 봄은 무엇을 하려 할까. '봄'은 잠든 것들을 깨우려 하고 꿈틀거리게 하지 않겠는가.

종장은 대자연의 섭리는 거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못 박듯이 분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지금쯤 어느 산자락의 매화 가지도 떠나가는 겨울바람에 흔들리며 꽃봉오리를 피워올리고 있을 것이다. 절후로야 입춘이 벌써 지났지만 달력상으로 그야말로 내일 모레가 봄 아닌가. 이래저래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인 봄을 아름답게 맞을 수 있도록 가슴 활짝 열어놓아야겠다.

문무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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