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영애의 고전음악]불멸의 피아니스트, 쇼팽

갑자기 성큼 다가온 봄기운이 봄비를 내려 대지를 적시고 따뜻한 봄바람이 도시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겨울의 끝자락을 쫓아내고 있다. 일교차가 크다 보니 아침의 쌀쌀한 기운에 잔뜩 여며 입고 나섰다가는 한낮 햇살에 땀을 흘릴 정도로 낭패를 보기가 일쑤다. 이제 주말이 지나고 3월이면 봄이 우리 곁에 서 있을 것만 같다.

지금부터 200년 전인 1810년 3월 1일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 근교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태어났다. 지금은 기록상으로 2월 22일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으니 보통 태어난 후 보름 정도 사이에 유아세례를 받던 당시의 풍습을 감안한다면 쇼팽은 적어도 2월 초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7세에 폴란드 민속 춤곡인 2개의 폴로네이즈(polonaise)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쇼팽의 천재성은 모차르트와 자주 비교될 정도였다. 6세 때부터 시작된 음악 교육은 1831년 그가 폴란드를 떠날 때까지 여러 스승을 거치면서 이어졌다.

비엔나를 거쳐 1832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쇼팽이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한 것도 2월 26일이었다. 이후 널리 알려진 조르쥬 상드(George Sand)와의 만남과 열애, 그리고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1811~1886)를 비롯해 으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1798~1863),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1803~1869) 등과의 우정은 쇼팽을 영원히 프랑스에 머물게 했다.

언젠가 어느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한국인이 사랑하는 피아노 음악 1위에서 10위 가운데 쇼팽의 작품이 80~90%를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우리의 취향에 쇼팽 피아노 음악이 잘 들어맞는다는 말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들이나 피아노를 좀 연주할 줄 아는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쇼팽보다 바흐나 베토벤의 작품 같은 필수적인 레퍼토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호할 수 있다. 그리고 화려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쇼팽보다 리스트를 좋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라는 악기를 오늘날처럼 다른 어떤 악기보다도 친근하게, 그리고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한 악기로 여길 수 있게 해 준 작곡가는 바로 쇼팽일 것이다. 약간의 우울함, 현란할 정도로 빠른 테크닉, 그리고 폭발적인 격정보다는 억눌려 있는 열정을 페달을 사용해 깊이 있게 퍼져나가도록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쇼팽이다. 서른 아홉이라는 짧은 생애를 격정과 섬세함, 그리고 매력적인 우울함이 가득 담긴 피아노 음악으로 승화시킨 프레데릭 프랑스와 쇼팽(Frederic Francois Chopin·1810.3.1~1849.10.17)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전 세계가 그를 기념하고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특별 연주회와 행사가 있을 것이다. 평소 쇼팽을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는 행복한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쇼패니스트임을 자청하고 있고, 1927년부터 바르샤바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서거 기념일인 10월 17일을 전후해 마련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쿨 출신의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아름다운 쇼팽의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

음악칼럼니스트·대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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