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뜨개질

내 손 아파 누군가 따뜻하게 하는 사랑…

박은진
박은진

♥초교생이 선생님 위해 목도리 짜

3학년이던 딸아이가 기말고사를 잘 치면 털실을 사 달라고 하기에 그러마고 약속을 했다. 결과가 나오자 제일 먼저 분홍색 계열의 털실을 사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담임선생님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겠단다. 생각이 기특해서 약속을 지키는 의미로 분홍색과 보라색이 적당히 섞인 순모 털실을 사다 주었다. 두 줄 뜨고 한 줄 풀기를 반복하더니 방학 내내 끙끙거리기를 반복하여 길다란 목도리를 완성했다. 마무리와 수술을 다는 것은 내가 도와주고 예쁘게 선물 포장해서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다. 목도리를 짠 자신도 기뻤겠지만 그 선물을 받아든 선생님이 더 기뻐하셨다. 그해 겨울, 몹시 춥던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딸아이가 뜬 목도리를 둘둘 감고 환하게 웃으며 "어머니!" 하고 부르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후 딸아이는 겨울방학만 되면 털실을 사달란다. 이젠 좀 컸다고 털실 값도 내놓는다. 올해도 6학년을 졸업하며 선생님께 목도리를 떠 드렸다. 작은 딸아이가 옆에 있다 자기도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단다. 결국 이번 겨울엔 목도리 1개, 워머 4개를 떴는데 정작 내가 하고 다닐 것이 없다. 이번엔 내 것도 하나 떠야지. 마음먹지만 뜨다 보면 새 주인이 생겨버린다. 봄을 재촉하는 비를 보니 올해도 내 것은 하나 못 뜨고 겨울이 다 지나갈 모양이다.

박은진(대구 서구 비산3동)

♥내 손 아파 누군가 따뜻하다면

내가 뜨개질을 시작한 것은 까마득한 40여년 전이다. 집에서 편물기를 들여놓고 속치마나 속바지 스웨터를 짜주고 돈을 버는 언니를 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자투리 실을 조금씩 얻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물자가 귀한 시절이어서 어렵게 얻은 자투리 실이 소중했지만 무언가를 짜기엔 내가 너무 어려서 무작정 모아 놓기만 했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그것을 보시곤 못 쓰는 비닐우산의 살을 다듬어서 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취미가 되어 버렸다.

학창시절엔 가정시간에 빛을 발하였고 혼수로 시부모님의 옷을 짜서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 그 솜씨를 그냥 썩히기 아깝다는 주변의 권유로 그때부터 돈벌이에 눈을 돌려서 수출품을 짜서 나만 아는 비자금을 만들어 남편 모르게 두 주머니를 차는 재미도 보았다.

요즘 한창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는 국제기구에서 아프리카 신생아를 돕기 위해 모자 짜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나나 내 주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제적인 운동에 동참할 기회가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내가 뜨개질을 배우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를 위한 마음의 선물은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가 입을 스웨터를 짜고 있다. 손목과 팔이 아파 쉬엄쉬엄 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나을 기색이 보이면 또다시 바늘을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아직도 나에겐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검은색 롱코트를 짜서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겨울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이가 더 들어 시력이 떨어지고 팔이 힘을 잃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건강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혹사시킨 몸이 반란을 일으키는 속내를 아무래도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이영숙(영주시 휴천2동)

♥외할머니의 손녀 대입선물

설 다음날, 가족들과 외가에 갔다. 친척들은 이제 대학이라는 더 넓은 사회로 나가는 나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잠시 후, 외할머니께서 종이 가방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수미야, 손으로 직접 짠 뜨개질 목도리다"라고 하시며 나에게 주셨다. 목도리는 길고 색깔도 내 피부 톤에 잘 어울렸다. 나는 외할머니의 감각에 감탄사가 저절로 쏟아졌다. 한올 한올 정성스럽게 엮인 실에서 외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목에 둘러보니 정말 따뜻했다. 평소 목이 답답해 목도리를 잘 하지 않았는데 외할머니께 받은 목도리는 어떤 것보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외할머니께서도 흐뭇해 하셨다. 외가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께서는 "엄마 어릴 적에도 셔츠를 멋지게 짜주셔서 입고 다녔다"고 하시며 여운을 남기셨다.

요즘 밖에 나갈 때마다 난 외할머니께서 주신 목도리를 빠뜨리지 않고 한다. 얇은 티 한 장을 입어도 춥지 않다. 어떤 옷보다 따뜻하고, 어머니의 사랑만큼 포근한 것이 외할머니의 사랑인 것 같다.

바느질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다. 그래서 '외할머니표 뜨개질 목도리'는 나에겐 정말 소중한 보물이다. 따뜻한 봄이 오면 외할머니와 벚꽃 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올겨울에는 외할머니의 목도리처럼 따뜻한 정성이 담긴 선물을 드리고 싶다."외할머니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수미(대구 수성구 신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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